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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뒤흔든 피아노의 왕이 말년엔 신부가 된 사연, 프란츠 리스트

1827년 12월, 파리의 한 아파트. 열여섯 살 소년이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성직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은 훗날 유럽 전역의 여성들을 설레게 한 최고의 스타 피아니스트가 되고, 다시 수십 년 뒤에는 정말로 사제복을 입은 신부가 됩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인생이 딱 이렇습니다. 한 사람 안에 이렇게까지 다른 얼굴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게, 알면 알수록 신기합니다.

열여섯 살,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겪다

리스트는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의 삶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은 성직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 무렵 카롤랭 드 생크릭이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상대 아버지의 반대로 관계가 끝나버립니다. 얼마나 상심이 컸던지 실신할 정도였고, 심지어 그가 죽었다는 잘못된 소문이 파리 신문에 부고 기사로 실리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열여섯 살에 이런 일을 연달아 겪었다면 과연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었을지, 상상하기 어려운 시기였을 것 같습니다.

파가니니를 본 뒤 완전히 달라진 사람

인생의 전환점은 뜻밖에도 다른 연주자의 무대에서 찾아왔습니다. 1832년, 리스트는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공연을 보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으로 보여준 극한의 기교에 자극받아, 자신도 피아노로 그만큼의 경지에 오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이후 그는 그야말로 초인적인 연습량을 소화하며 당대 최고의 비르투오소로 성장했습니다. 유명한 일화 중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리스트는 연주 도중 자신이 악보를 전부 외우고 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무대 위에서 악보를 청중석으로 던져버렸다고 해요. 지금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파격적인 퍼포먼스입니다. 암보를 단순히 외우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나오기 힘든 행동이었을 겁니다.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온 연습곡

이 시기 그의 야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열다섯 살 때 초고를 쓰고 훗날 완성한 초절기교 연습곡입니다. 열두 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말 그대로 피아노 기교의 극한을 시험하는 곡들인데, 초기 버전이 워낙 어려워서 로베르트 슈만조차 이 곡을 세상에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열 명 정도일 거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리스트는 이 곡을 자신의 스승이었던 카를 체르니에게 헌정했는데, 스승을 향한 존경과 동시에 자신이 도달한 경지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담긴 헌정이었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화려한 사생활과 반전의 시작

파가니니 이후 리스트는 유럽 전역을 돌며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잘생긴 외모와 압도적인 연주 실력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마리 다구 백작부인을 비롯해 여러 염문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하게 살던 그가 1861년 로마로 거처를 옮기면서 삶의 방향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865년, 정말로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하급 성직자 서품을 받고 사제복을 입게 됩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아베 리스트, 즉 리스트 신부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연주회 대신 교회 음악 작곡에 몰두했고,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갔다고 전해집니다.

두 얼굴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이었을지도

저는 개인적으로 리스트의 이런 반전을 단순히 극과 극의 변화로만 보지 않습니다. 열여섯 살 때 잠깐 품었던 성직자의 꿈이 화려한 연주 인생을 한 바퀴 돌아 결국 말년에 실현된 거라고 보면,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하나의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그 사이에 파가니니라는 자극과 청춘의 사랑과 상실이 끼어들면서 길이 아주 크게 돌아갔을 뿐이죠. 지금 겪는 방황이나 감정이 나중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리스트의 인생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출처 – 앨런 워커 프란츠 리스트 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