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 카르멘이 빠지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이 작품을 세상에 처음 내놓았을 때, 작곡가 조르주 비제는 박수 대신 싸늘한 침묵과 혹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채 석 달이 지나기도 전에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의 명성을 생각하면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무대 위에 등장한 낯선 여자
1875년 3월 3일,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카르멘이 처음 막을 올렸습니다. 당시 이 극장은 가족 단위 관객이 즐겨 찾던, 비교적 얌전하고 도덕적인 공연을 선보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대 위에는 담배 공장에서 일하며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자유분방하게 사랑을 하다 결국 옛 연인의 손에 목숨을 잃는 집시 여인이 등장했습니다. 순정적인 여주인공에 익숙했던 파리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낯설고 불편한 그림이었을 겁니다. 결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피엔딩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살인으로 막을 내리는 비극적 결말에 적잖이 당혹스러워했다고 전해집니다.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지만, 원하던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카르멘이 흔히 알려진 것처럼 완전히 망한 공연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같은 시즌에만 마흔여덟 차례나 공연이 이어졌고, 일부 회차는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비제가 기대했던 뜨거운 찬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파격적인 소재와 사실주의적 연출을 두고 도덕성 논란까지 일었습니다. 흥행 참패라기보다는, 비제가 그리려던 세계와 당시 관객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세계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 미묘한 온도 차를 비제 본인은 완전한 실패로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하다
원래도 몸이 약한 편이었던 비제는 초연 이후 눈에 띄게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류머티스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실패했다는 좌절감과 스트레스가 더해지면서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됐습니다. 그리고 초연으로부터 정확히 석 달이 지난 1875년 6월 3일, 급성 심장 발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아내 주네비에브와 결혼한 지 꼭 6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서른여섯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이른 죽음이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서명한 계약서
비제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빈 궁정 오페라와의 공연 계약서에 서명을 남겼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 무대를 볼 수 없었지만, 같은 해 10월 빈에서 열린 공연은 파리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폭발적인 호평 속에 카르멘은 그야말로 재발견되었고, 이후 브뤼셀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뉴욕까지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 음악계에서 서로 대립하던 보수파와 진보파 작곡가들, 이를테면 바그너와 브람스 같은 인물들까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카르멘을 극찬했다고 합니다. 작곡가 본인이 살아서 보지 못한 성공이었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이야기를 알고 나면 카르멘을 듣는 느낌이 조금 달라집니다. 지금은 전 세계 오페라 하우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레퍼토리 중 하나로 꼽히지만, 정작 그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자신이 만든 여자 주인공만큼이나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카르멘이 자유를 노래하며 죽어가고, 무대 밖에서는 그를 만든 사람이 인정받지 못한 채 스러져간 셈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비제 본인은 그 성공을 끝내 보지 못했잖아요. 죽고 나서야 세상이 알아준 거고요. 저는 이 부분이 오히려 마음에 남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노력이 당장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거요. 비제는 실패했다고 믿으며 눈을 감았지만 그 곡은 결국 살아남았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당장 빛을 못 본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짜 잘 만든 건 결국 어딘가에서 알아봐 주는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참고: Classic FM(classicf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