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연주는 잘 들리는데 내 연주는 안 들린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할 때 친구들 연주를 듣고 서로 평가하는 수업이 있었어요. 한 사람이 무대에서 치면 나머지는 객석에 앉아 듣고, 끝나면 어떤 점이 좋았는지, 어디를 고치면 좋을지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어요. 신기하게도 남의 연주는 정말 잘 들렸어요. 여기서 왼손이 너무 크다, 이 부분은 템포가 급해진다, 페달이 길어서 화음이 섞인다 같은 게 귀에 바로 꽂혔어요.
그런데 정작 제가 칠 때는 그런 게 잘 안 들렸어요. 사실 본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요. 연습하면서 여기는 조심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부분들이요. 문제는 치는 그 순간이에요. 손가락은 다음 음을 찾아가야 하고, 머리는 악보를 따라가야 하고, 몸은 긴장하고 있으니 귀까지 객관적으로 쓸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 분명히 고치려고 했던 부분도 그냥 모르고 지나가 버려요.
더 큰 문제는 이걸 반복하다 보면 나쁜 습관이 고쳐졌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머릿속으로는 이미 고쳤다고 생각하니까 실제 소리를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요. 레슨 선생님이 같은 지적을 또 하면 그제야 아직 그대로였구나 하고 놀라는 거죠.
입시 준비하면서 늦게 알게 된 방법
연습한 걸 녹음해서 들어 보는 방법을 저는 꽤 늦게 알았어요. 입시 시험을 준비할 때였어요. 녹음을 들어 보면 내가 생각한 소리와 실제로 나는 소리가 꽤 다르다는 걸 알게 돼요. 치면서는 충분히 여리게 쳤다고 생각한 부분이 녹음에서는 그냥 평범하게 들리기도 하고, 고르게 쳤다고 생각한 빠른 부분이 군데군데 뭉쳐 있기도 해요.
그때 이 방법을 더 일찍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해요. 녹음을 듣는 건 결국 내 연주를 남의 연주처럼 듣는 연습이에요. 평가 수업에서 친구 연주의 문제를 잘 찾아냈던 그 귀를 내 연주에 쓰는 거죠. 이걸 빨리 시작할수록 메타인지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내가 지금 어떻게 치고 있는지,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를 스스로 아는 힘이요. 메타인지가 생기면 선생님이 말해 주기 전에 먼저 고칠 곳을 찾게 되고, 연습 시간도 훨씬 알차게 쓸 수 있어요.
녹음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요즘은 휴대폰 하나면 충분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녹음하고, 악보를 펴 놓고 들으면서 마음에 걸리는 곳에 연필로 표시해 두면 돼요. 들을 때는 한꺼번에 다 잡으려고 하기보다 하나씩 귀를 정해서 들으면 좋아요. 한 번은 템포가 흔들리는 곳만, 한 번은 셈여림이 악보대로 나오는지만, 또 한 번은 오른손 선율이 왼손 반주에 묻히지 않는지만 들어 보는 식이에요. 페달을 쓰는 곡이라면 화음이 바뀔 때 소리가 지저분하게 섞이지 않는지도 꼭 확인해 볼 부분이에요. 이렇게 나눠서 들으면 그냥 흘려들을 때는 안 보이던 게 하나씩 드러나요.
연주한 직후보다는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 들으면 더 객관적으로 들려요. 방금 친 기억이 남아 있으면 귀가 실제 소리보다 머릿속 소리를 듣게 되거든요.
학원에서는 모든 아이에게 시키지 않아요
이렇게 좋은 방법이지만 학원에서 모든 아이에게 시키지는 않아요. 바이엘이나 기초 교재를 치는 친구들에게는 녹음을 시키지 않고, 곡에 들어간 친구들에게만 핸드폰으로 녹음해 보라고 해요.
이유는 듣는 귀 때문이에요. 녹음을 듣는다고 누구나 자기 문제를 알아채는 건 아니에요. 아직 듣는 귀가 없는 친구들은 녹음을 들어도 자기가 어떻게 치는지 잘 몰라요. 틀린 음이 아니면 다 괜찮게 들리는 거죠. 셈여림의 차이나 소리의 고르기 같은 건 어느 정도 귀가 열려야 들리기 시작해요. 그래서 녹음은 이게 통하는 친구들에게만 시켜요. 곡을 치면서 표현을 고민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녹음을 들으면 스스로 고칠 곳을 찾아내요.
기초 단계 아이들에게 억지로 녹음을 시키면 오히려 피아노가 숙제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이때는 선생님이 대신 귀가 되어 주고, 아이가 조금씩 소리를 구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녹음을 꺼내는 게 순서라고 생각해요.
녹음할 때 휴대폰은 피아노 바로 위보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두는 게 좋아요. 너무 가까우면 건반 소리만 크게 잡혀서 실제 울림과 다르게 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