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자마자 시작되는 자리 싸움
실기시험이 얼마 남지 않으면 음대 건물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평소에는 수업 끝나고 여유 있게 연습실에 들어가던 친구들도, 시험이 다가오면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 사이 비는 시간까지 전부 연습에 쓰려고 해요. 문제는 연습실 수가 정해져 있다는 거예요. 학생은 많고 피아노 방은 몇 개 안 되니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경쟁이 붙어요.
집이 학교 가까운 친구들은 건물 문이 열리자마자 새벽같이 와서 자리를 잡았어요. 연습실 피아노 위에 악보를 펼쳐 두면 그게 ‘여기 사람 있어요’라는 표시였거든요. 조금 늦게 도착하는 날이면 복도를 한 바퀴 돌면서 빈방이 있나 기웃거리는 게 일이었어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이 마냥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친한 친구들끼리는 한 방을 잡아 놓고 돌아가면서 쳤어요. 한 사람이 치는 동안 나머지는 옆에서 듣다가 “거기 왼손이 좀 묻혀”, “템포가 갑자기 빨라졌어” 하고 말해 주곤 했고요. 혼자 칠 때는 절대 안 들리던 부분이 친구 귀에는 바로 들리더라고요. 연습실이 부족해서 생긴 방식이었지만, 서로의 연주를 봐 주던 그 시간이 저한테는 지금도 낭만으로 남아 있어요.
음대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연습 메이트를 한두 명 만들어 두는 걸 권하고 싶어요. 자리를 나눠 쓰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남의 귀로 내 연주를 듣는 기회가 생기니까요.
피아노 없이 하는 연습
아무리 부지런히 움직여도 연습실을 못 잡는 날은 있어요. 그럴 때 손 놓고 있으면 불안감이 점점 커져요. 시험은 다가오는데 오늘 하루를 그냥 날린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저는 그런 날이면 시험곡을 이어폰으로 계속 들었어요. 그냥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에 맞춰 머릿속으로 제가 피아노 앞에 앉아 치는 장면을 그려 봤어요. 여기서 몇 번 손가락이 들어가고, 이 부분에서 페달을 바꾸고, 저기서 손이 크게 이동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어요.
해 보면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손으로 칠 때는 손가락이 알아서 넘어가던 부분이, 머릿속으로 그리려고 하면 갑자기 하얘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 지점이 바로 손 기억에만 기대고 있던 곳이에요. 그래서 이 연습은 불안을 달래는 것뿐 아니라 내가 어디를 확실히 모르는지 찾아내는 데도 꽤 쓸모가 있었어요. 다음 날 연습실을 잡으면 그 부분부터 먼저 펼쳐 보곤 했죠.
듣는 음원도 한 가지만 고집하지 않는 게 좋아요.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마다 템포나 강약, 쉬는 호흡이 꽤 달라서 여러 버전을 들어 보면 내가 어떻게 치고 싶은지가 더 또렷해져요. 다만 시험 직전에는 너무 다른 해석을 많이 들으면 오히려 흔들릴 수 있으니, 마지막 며칠은 내가 기준으로 삼은 연주 하나 정도만 듣는 편이 나았어요.
시험 며칠 앞두고는 부분 연습, 대신 손은 아껴서
시험이 며칠 안 남으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치고 싶은 마음이 커져요. 통으로 한 번 쳐 봐야 안심이 되니까요. 그런데 이 시기에도 부분 연습이 정말 중요해요. 자꾸 걸리는 마디, 손이 꼬이는 구간을 따로 떼어서 다듬어야 전체가 안정돼요.
단, 여기서 꼭 조심해야 할 게 손가락이에요. 불안한 마음에 어려운 구간만 몇 시간씩 붙잡고 있으면 손가락이나 손목에 무리가 와요. 시험 직전에 손이 아프면 그동안 준비한 게 다 소용없어지잖아요. 그래서 부분 연습을 하더라도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꼭 넣고, 손이 뻐근하다 싶으면 바로 멈추는 게 좋아요. 그날 못 채운 연습량은 앞에서 말한 머릿속 연습으로 채우면 되고요.
부분 연습을 할 때는 템포를 확 낮춰서 치는 것도 도움이 돼요. 빠르게 반복하면 손에 힘이 들어가고 실수도 같이 굳어 버리기 쉬운데, 천천히 정확하게 몇 번 치고 나서 원래 속도로 돌아가면 손이 훨씬 덜 피곤해요. 시험 전날에는 새로운 걸 고치려 하기보다 이미 된 부분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가볍게 치는 게 마음도 손도 편했어요.
시험 직전에 꼭 찾아오던 축제
이건 정보라기보다는 그냥 그때의 속상함이에요. 이상하게 저희 학교는 실기시험 바로 앞에 꼭 축제가 있었어요. 다른 과 친구들은 공연 보러 다니고 신나게 노는데, 저희는 그 분위기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어요. 마음은 밖에 가 있는데 손은 건반 위에 있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요.
연습이 많이 걱정되는 친구들은 아예 축제 기간에 학교를 안 나오고 집에서 연습했어요. 저도 그랬던 적이 있고요. 1년에 한 번 있는 축제를 그렇게 보내는 게 그때는 너무 아까웠어요. 음대생한테 축제는 시험 직전의 마지막 연습 기간이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