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를 앞두고 찍은 영상 한 편
대회를 몇 주 앞둔 아이가 있었어요. 곡은 다 외웠고 틀리는 곳도 거의 없었는데, 딱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크기가 똑같았거든요. 악보에는 포르테도 있고 피아노도 있고 크레셴도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는데, 아이 연주는 한 가지 크기로 쭉 이어졌어요.
몇 번을 설명하고 나서 다시 쳐 보라고 했더니, 이번엔 정말 열심히 셈여림을 표현하더라고요. 포르테가 나오면 어깨를 크게 들썩이고 고개를 숙이면서 온몸으로 건반을 누르는 시늉을 하고, 피아노가 나오면 몸을 웅크리고 손을 살금살금 움직였어요. 문제는 소리였어요. 동작은 무대 위 연주자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데, 정작 들리는 소리는 아까랑 하나도 다를 게 없었어요.
웃음을 꾹 참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부모님께 보내 드렸어요. 연습 상황을 공유하려던 거였는데, 답장이 오자마자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영상 보고 박장대소하셨다고요. 나중에 상담할 때도 그 얘기로 한참 웃었는데, 그때 제가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나요. 손가락 힘 조절은 아직 못 하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음악가라고요. 진심이었어요. 셈여림을 무시한 게 아니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그게 손끝까지 내려오지 않았던 거니까요.
동작이 아니라 무게로 치는 연습
이 일을 계기로 셈여림을 가르치는 방식을 조금 바꿨어요. 그전에는 여기는 세게, 여기는 여리게 하고 말로만 알려 줬는데, 아이들 머릿속에서 세게는 몸을 크게 움직이는 것과 쉽게 섞여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소리를 바꾸는 건 몸짓이 아니라 손가락에 실리는 무게라는 걸 직접 느끼게 해 주기로 했어요.
사실 셈여림이 빠지는 건 이 아이만의 일이 아니에요. 곡을 처음 배울 때 아이들은 음표와 박자를 맞추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꽉 차요. 악보 위아래에 작게 붙은 f나 p 같은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죠. 그래서 저는 곡을 어느 정도 외운 뒤에 셈여림만 따로 보는 시간을 만들어요. 연필로 포르테에는 동그라미, 피아노에는 세모를 치게 하고, 그 표시만 따라가면서 같은 음 하나를 크기만 바꿔 쳐 보게 해요. 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아이들이 소리 크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요.
먼저 팔에 힘을 완전히 빼고, 제가 아이 손목을 살짝 들었다가 놓아 줘요. 팔 무게가 그대로 건반에 떨어지면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나요. 아이들이 깜짝 놀라요. 힘을 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커지냐고요. 반대로 여린 소리는 건반 바닥까지 누르되 천천히 들어가는 연습을 해요. 건반을 쓰다듬는다는 느낌으로요. 소리를 작게 내라고 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건반을 끝까지 누르지 않아서 소리가 아예 안 나거나 끊겨 버리는데, 바닥까지는 가되 속도를 늦추는 거라고 하면 훨씬 쉽게 이해해요.
크레셴도는 계단으로 설명해요. 한 칸씩 올라갈 때마다 팔 무게를 조금씩 더 싣는 거예요. 처음엔 다섯 칸 정도로 쪼개서 음 하나마다 크기를 달리해 보게 하고, 익숙해지면 그 칸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 보라고 해요. 셈여림 단계도 처음부터 다 알려 주지는 않아요. 피아니시모, 메조피아노, 메조포르테까지 한꺼번에 설명하면 아이들은 오히려 헷갈려해요. 처음엔 크다와 작다 두 가지만 확실하게 구분하게 하고, 그게 손에 붙으면 그 사이에 중간 크기를 하나씩 끼워 넣는 식으로 넓혀 가요.
내 귀로 들어야 달라져요
손으로 익히는 것만큼 중요한 게 듣는 거예요. 그 아이도 그랬지만, 연주하는 아이들은 자기가 셈여림을 넣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어요. 몸으로는 분명히 표현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셈여림 연습을 할 때 녹음을 꼭 같이 해요. 쳐 보고 바로 들어 보면, 아이 스스로 어 똑같네 하는 표정을 지어요. 제가 열 번 말하는 것보다 그 한 번이 훨씬 효과가 있어요.
같은 구간을 제가 두 번 쳐서 들려주는 것도 자주 써요. 한 번은 악보에 적힌 셈여림을 다 빼고, 한 번은 제대로 넣어서요. 어느 쪽이 더 좋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두 번째를 골라요. 음은 똑같은데 왜 다르게 들리는지 스스로 말해 보게 하면, 그 순간부터 악보의 작은 글자들을 대하는 눈빛이 달라져요.
그 아이는 대회 전까지 손목 떨어뜨리기를 꽤 오래 연습했어요. 무대에서도 몸은 여전히 많이 움직였는데, 이번엔 소리도 같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