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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오래 배운 아이는 무엇이 달라질까 진도만 빨랐던 아이와 천천히 즐긴 아이

끈기는 정말 엄청난 무기예요.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가장 확실하게 알게 된 게 이거예요. 피아노를 잘 치게 되는 아이와 피아노를 오래 치는 아이는 생각보다 다른 경우가 많았고, 결국 끝까지 가서 무언가를 얻어 가는 쪽은 재능보다 끈기가 있는 아이였어요. 그 생각을 굳히게 만든 두 아이가 있어요.

한 친구는 조금 극단적인 경우였어요. 악보를 정말 잘 읽고 손가락도 잘 돌아가서, 새 곡을 받으면 금방 빠르게 쳐 냈어요. 대회에 나가는 것도 좋아했고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가르치기 쉬운 아이 같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셈여림을 살리거나 프레이즈를 다듬는 것처럼 음악적인 요소를 배우려고 하면 그 시간을 못 견뎌 했어요. 이미 다 칠 수 있는데 왜 같은 곡을 또 치냐며, 무조건 다음 진도로 넘겨 달라고 떼를 썼죠.

어머님과도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머님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하셨어요. 아이가 피아노를 그만두는 것보다는 그래도 나으니,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 달라고 부탁하셨죠. 솔직히 내키지 않았어요. 속도만 빠르다고 곡을 다 익힌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아이와 어머님의 뜻이 그러니, 악보를 읽고 속도가 나오면 계속 진도를 넘겨줬어요.

그렇게 한동안은 아무 문제 없이 쭉쭉 나갔어요.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진짜 연습이 필요한 테크닉이 나왔어요. 손가락이 잘 돌아간다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느린 속도로 여러 번 쌓아 올려야만 넘을 수 있는 부분이었죠. 그 아이는 그걸 이겨 내지 못했어요. 어렵다고 말하는 대신, 그동안 늘 잘한다는 말만 들어 왔으니 어려워서 그만둔다고 인정하는 게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아요. 결국 피아노가 싫다고 하면서 그만뒀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일은 쓰린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때 조금 더 버텨서 음악적인 부분을 천천히 가르쳤더라면, 그 벽 앞에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빠르게 나가는 진도가 아이에게 자신감을 준 게 아니라, 어려움을 견디는 법을 배울 기회를 빼앗은 건 아닌가 싶거든요.

반대로 기억에 남는 또 한 친구가 있어요. 솔직히 음악적인 재능이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진도도 느렸고, 한 곡을 익히는 데 다른 아이들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피아노를 치는 시간 자체를 즐겼어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기 속도대로 한 곡 한 곡을 쳐 나갔죠. 틀려도 크게 속상해하지 않고 다시 처음부터 쳐 보는 아이였어요. 레슨이 끝나면 오늘 배운 곡을 한 번 더 치고 가도 되냐고 묻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진도는 느렸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이 아이에게는 숙제가 아니라 쉬는 시간 같아 보였어요.

이 친구는 처음 학원에 왔을 때 한글도 잘 몰라서 많이 힘들어했어요. 교재에 적힌 설명을 읽지 못하니 저도 하나하나 말로 풀어 줘야 했고요. 그렇게 오래 다니는 동안 신기한 일이 생겼어요.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한글이 늘었다고 어머님이 정말 기뻐하셨어요.

돌아보면 이론 수업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음표 이름, 빠르기말, 셈여림 기호처럼 음악 용어를 배우려면 글자를 읽고 써야 하거든요. 저는 이 친구에게 종합장에 음악과 관련된 낱말을 따라 쓰는 숙제를 자주 내줬어요. 높은음자리표, 쉼표, 점점 크게 같은 말들을 한 줄씩 또박또박 적어 오는 숙제였죠. 다른 숙제는 가끔 빼먹어도 이 따라 쓰기만큼은 정말 성실하게 해 왔어요. 삐뚤빼뚤하던 글씨가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반듯해지는 게 보였고요.

한글 공부도 결국 이렇게 글씨를 조금씩 써 보면서 느는 거구나 싶었어요. 음악 용어를 익히려고 시작한 따라 쓰기가 한글 공부까지 이어졌으니, 꾸준히 앉아서 무언가를 해 나가는 시간이 아이에게 여러 방면으로 힘이 된 거예요.

그 아이는 피아노만 는 게 아니었어요.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른 공부도 차분하게 해 나가는 모습이 보였고, 행동이나 말투도 점점 성숙해졌어요. 한 자리에 앉아 끝까지 해내는 경험을 몇 년 동안 쌓다 보니, 그게 아이의 습관이자 성격이 된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조금만 어려워도 금방 딴짓을 하던 아이가, 나중에는 어려운 마디를 만나도 먼저 천천히 쳐 보겠다고 말할 만큼 달라져 있었어요.

두 아이를 떠올리면 늘 같은 생각에 닿아요. 재능은 출발선을 앞당겨 줄 뿐이고, 멀리 가게 해 주는 건 끈기라는 거예요. 빠르게 잘 치는 아이도 어려운 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그 앞에서 멈추고, 느린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즐기며 쌓아 가면 피아노 이상의 것을 얻어 가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들께 진도가 빠른지보다 아이가 피아노 앞에 즐겁게 오래 앉아 있는지를 봐 달라고 말씀드려요. 진도표의 숫자는 금방 잊히지만, 몇 년 동안 무언가를 꾸준히 해낸 경험은 아이에게 평생 남는 무기가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