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체르니 40번을 끝까지 마치는 아이는 열 명 중 한 명도 안 돼요. 제가 레슨하면서 체감한 숫자로는 10퍼센트가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학부모님 상담을 하다 보면 이 체르니 40번이 자주 기준처럼 등장해요.
상담 때 정말 자주 듣는 질문
피아노를 처음 시작하는 아이의 어머님들, 아니면 몇 년째 배우고 있는 아이의 어머님들이 공통으로 많이 물어보시는 게 있어요. 몇 년 정도 쳐야 혼자서 취미로 칠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리고 거의 같이 따라오는 질문이 체르니 40번까지 치면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느냐는 거고요.
이 질문이 나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요. 언제까지 레슨을 시켜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면 아이가 피아노를 평생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되는지 기준을 알고 싶으신 거잖아요. 레슨비도 들고 시간도 드니까 끝이 어디인지 궁금하신 게 당연해요.
체르니 40번이 기준이 되는 이유
보통은 체르니 40번까지 치면 웬만한 악보를 보고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말씀드려요. 이 단계까지 오면 손가락이 빠른 패시지를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고, 악보를 읽는 속도도 붙어 있어서, 좋아하는 곡 악보를 사서 혼자 연습해 보는 게 가능해지거든요. 가요 편곡 악보나 영화 음악, 쉬운 클래식 소품 정도는 시간이 조금 걸려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꼭 덧붙이는 말이 있어요. 피아노는 개인차가 정말 심한 분야라서, 몇 년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워요. 같은 시기에 시작해도 아이마다 손의 감각, 집에서 연습하는 양, 집중하는 방식이 다 달라서 같은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는 곳이 달라요. 그래서 저는 기간보다 어떤 연습을 해 왔느냐를 더 중요하게 봐요.
진도만 나간 체르니 40번은 의미가 없어요
이 부분은 상담할 때마다 조심스럽게, 그래도 꼭 말씀드리는 부분이에요. 체르니 40번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끝냈다고 해서 모두가 그 실력을 갖추는 건 아니에요. 정말 진도만 나가는 엉터리 연습을 했다면, 책 번호만 40번일 뿐 손은 기초 단계와 다를 게 없어요.
곡을 대충 끝까지 치기만 하고, 틀린 데를 그냥 넘어가고, 박자나 셈여림은 신경 쓰지 않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데만 집중하면 책은 빨리 끝나요. 그런데 그렇게 끝낸 책은 손에 남는 게 별로 없어요. 그 상태로 혼자 새 악보를 펼치면 막막해지는 건 당연하고요. 반대로 한 곡 한 곡을 정성 들여 제대로 마친 아이는, 꼭 체르니 40번이 아니어도 혼자 악보를 보고 즐길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솔직히 레슨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경우가 제일 아쉬워요. 체르니 40번까지 갔으니 이제 다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좋아하는 곡 하나 혼자 못 쳐서 피아노를 멀리하게 되는 거요. 책 번호라는 숫자만 보고 판단하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에요.
인내심이 필요한 악기라서
체르니 40번까지 가는 아이가 10퍼센트도 안 되는 건, 그만큼 그 과정이 길고 힘들기 때문이에요. 하루 이틀 반짝 열심히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꾸준히 연습하고 정성을 들여야 도착할 수 있는 단계예요. 중간에 지루한 구간도 있고, 손이 안 따라와서 답답한 시기도 있어요. 그걸 버텨 내는 인내심이 있어야 하는 게 악기예요.
그래서 상담 때 몇 년 치면 되느냐고 물어보시면, 저는 기간이나 책 번호보다 지금 아이가 한 곡을 얼마나 제대로 치는지를 같이 봐 달라고 말씀드려요. 그게 결국 나중에 혼자 피아노를 즐길 수 있느냐를 결정하니까요.
집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도 있어요. 아이가 처음 보는 쉬운 악보를 펼쳤을 때 크게 막히지 않고 천천히라도 끝까지 칠 수 있는지, 배운 곡에서 틀린 부분을 스스로 알아채고 다시 고쳐 치는지, 선생님이 없어도 한 곡을 혼자 연습해서 완성해 오는지를 보시면 돼요. 이런 모습이 보인다면 책 번호와 상관없이 취미로 피아노를 즐길 힘이 생기고 있는 거예요. 반대로 진도는 많이 나갔는데 이런 모습이 잘 안 보인다면,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기초를 다시 다지는 쪽이 아이에게 더 도움이 돼요.
흔히 체르니 40번이라고 부르는 책은 체르니의 작품번호 299번, 속주 연습곡집이에요. 이름 그대로 연습곡 40개가 실려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