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스티커는 없앴고, 연습 기록장은 지금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둘 다 아이 연습 습관을 잡으려고 쓰는 도구인데, 막상 오래 써 보니 하나는 의미가 사라졌고 하나는 쓰면 쓸수록 쓸모가 보였거든요.
스티커는 왜 없앴냐면요
피아노 학원이나 레슨에서 스티커판 많이 쓰잖아요. 연습해 오면 스티커 하나, 한 곡 끝내면 스티커 하나, 판이 다 차면 작은 선물. 처음에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요. 스티커 하나 받으려고 집에서 한 번이라도 더 쳐 보게 되니까요. 시작할 때 동기를 붙여 주는 데는 분명히 효과가 있어요.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겼어요. 어느 순간부터 스티커 붙이는 게 의무처럼, 당연한 일처럼 되어 버리더라고요. 레슨 끝나면 붙이는 거, 원래 받는 거. 아이들 입장에서는 연습을 잘해서 받는 상이 아니라 그냥 레슨의 한 순서가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스티커가 있어도 연습량이 늘지 않고, 붙여도 별로 기뻐하지 않고, 결국 스티커의 의미가 없어져 버렸어요.
솔직히 이건 저도 좀 허탈했어요. 처음 의도는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해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거였는데, 반복되다 보니 그 기분은 빠지고 형식만 남은 거니까요. 그래서 나중에는 스티커를 아예 없애 버렸어요.
연습 기록장은 달라요
반대로 연습 기록장은 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하루에 몇 번 쳤는지, 몇 분 쳤는지를 아이가 직접 표시하는 건데, 이건 스티커처럼 보상이 아니라 기록이에요. 이 차이가 커요. 스티커는 누군가가 주는 것이라 받는 순간 끝나지만, 기록은 아이가 스스로 남기는 것이라 쌓일수록 다시 들여다볼 거리가 생겨요. 지난달과 이번 달을 비교해 볼 수도 있고요.
기록장의 핵심은 정직하게 표시하는 거예요. 안 친 날은 안 쳤다고, 조금 친 날은 조금 쳤다고 그대로 적어야 해요. 그렇게만 해 준다면 기록장 하나로 알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아요.
우선 연습량에 따라 테크닉이 얼마나 늘었는지가 보여요. 일주일 동안 꾸준히 친 아이와 레슨 전날 몰아서 친 아이는 레슨 때 손 상태가 달라요. 그런데 기록이 없으면 그냥 이번 주는 잘 쳤네, 이번 주는 좀 안 됐네로 끝나요. 기록장이 있으면 이번 주에 얼마나 쳤는데 이만큼 늘었구나, 하고 연습과 결과를 연결해서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아이마다 효율적인 연습량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똑같이 하루 20분을 쳐도 어떤 아이는 금방 손에 붙고, 어떤 아이는 그보다 더 쳐야 비슷하게 따라와요. 반대로 어떤 아이는 오래 친다고 더 느는 게 아니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집중이 풀려서 오히려 대충 치게 되기도 해요. 기록이 몇 주 쌓이면 이 아이는 이 정도 치면 충분히 늘고, 이 아이는 조금 더 필요하겠다는 게 보여요. 그걸 알면 아이마다 연습 목표를 다르게 잡아 줄 수 있어요. 무조건 하루 30분 같은 똑같은 숙제를 내는 대신, 짧게 쳐도 잘 붙는 아이는 횟수를 줄이고 집중해서 치게 하고, 시간이 더 필요한 아이는 나눠서 조금씩 더 치게 하는 식으로요. 연습 시간이 길다고 실력이 그만큼 비례해서 느는 건 아니라는 연구도 있는데, 레슨하면서 보는 모습도 딱 그래요.
기록장을 쓸 때 조심하는 것
기록장이 스티커처럼 되지 않으려면 혼내는 도구가 되면 안 돼요. 연습 안 한 날이 적혀 있다고 혼나면, 아이는 다음부터 안 친 날도 쳤다고 적어요. 그 순간 기록장은 정직한 기록이 아니라 숙제 검사가 되고, 그 안에 적힌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어져요.
기록장을 볼 때는 많이 친 날보다 안 친 날이 솔직하게 비어 있는지가 오히려 더 중요해요. 안 친 날을 그대로 비워 둘 수 있는 분위기여야 나머지 기록도 믿을 수 있으니까요. 연습량이 적은 주에는 혼내기보다 이번 주는 이만큼 쳤으니 손이 이 정도구나 하고 같이 확인해요. 아이가 스스로 연습량과 실력의 관계를 느끼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기록장이 잔소리 없이도 제 역할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