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저를 빼빼로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 손가락이 워낙 말라서 붙은 별명이에요. 레슨하는 아이들 손이랑 나란히 놓아 보면 제 손가락이 더 가늘 때도 있었고, 시중에 파는 반지 중에는 맞는 사이즈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웃었지만,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 손가락은 오래된 고민이었어요.
가는 손가락이 피아노에서 불리한 이유
피아노 소리는 결국 건반을 누르는 힘과 무게에서 나와요. 손가락이 가늘고 힘이 약하면 같은 음을 쳐도 소리가 얇아지기 쉬워요. 특히 바깥쪽에 있는 4번과 5번 손가락이 문제예요.
4번 손가락은 원래 혼자 움직이기 어려운 손가락이에요. 손등 쪽에서 3번, 5번 손가락과 힘줄이 연결되어 있어서, 4번만 따로 들어 올리려고 하면 옆 손가락이 같이 딸려 올라가요. 피아노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4번 손가락 때문에 한 번쯤 애를 먹어요.
5번 손가락은 짧고 손의 가장 바깥에 있어요. 그런데 피아노 곡에서는 이 5번이 중요한 일을 많이 맡아요. 오른손 5번은 멜로디의 가장 높은 음, 왼손 5번은 베이스의 가장 낮은 음을 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곡의 윤곽을 잡아 주는 음을 제일 약한 손가락이 쳐야 하는 셈이에요.
저처럼 손가락이 가는 사람은 이 약점이 더 크게 드러나요. 화음을 크게 쳐야 하는 곳에서 5번이 버티지 못하고 꺾이거나, 멜로디 끝음이 다른 음에 묻혀 버리는 일이 생겨요. 전공하는 동안 손가락 굵기가 보통만 됐어도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어요.
연습은 많이, 하지만 무리는 하지 않기
약한 손가락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으니 연습은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손가락이 약한 사람일수록 조심해야 할 게 있어요. 힘을 기르겠다고 무리하게 반복하면 손가락 인대가 늘어날 수 있어요. 한 번 다치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동안은 연습 자체를 못 하게 돼요.
집에서 아이가 연습하는 걸 지켜볼 때도 확인할 수 있는 신호가 있어요. 음계나 빠른 구간을 칠 때 소리가 고르지 않고 중간에 한두 음만 작게 들리는지, 5번으로 칠 때 손가락 첫 마디가 안쪽으로 푹 꺾이는지, 4번을 누를 때 3번이나 5번이 같이 들썩이는지 보면 돼요. 이런 모습이 보인다고 해서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아이가 거쳐 가는 단계예요. 다만 습관으로 굳기 전에 알아차리면 고치기가 훨씬 쉬워요.
그래서 약한 손가락을 연습할 때는 몇 가지를 지키는 게 좋아요. 먼저 손가락 끝을 세워서 치는 거예요. 손가락 첫 마디가 안으로 꺾이면 힘이 건반까지 전달되지 않고 관절에만 부담이 가요. 손가락 끝으로 건반을 짚는다는 느낌을 계속 확인해야 해요.
또 손가락 힘만으로 누르려고 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가는 손가락으로 큰 소리를 내려면 팔과 손목의 무게를 손가락 끝으로 흘려보내야 해요. 손가락은 그 무게를 받쳐 주는 기둥 역할을 하는 거예요. 이 감각을 익히면 손가락 굵기에 비해 훨씬 단단한 소리가 나요.
빠르게 치면 약한 손가락은 다른 손가락에 묻어서 대충 넘어가기 쉬워요. 천천히 한 음씩 소리를 들으면서 4번과 5번이 다른 손가락만큼 또렷하게 나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예요. 손이 뻐근하거나 손가락 마디가 시큰하면 그날은 거기서 멈추는 게 맞아요.
곡을 고르는 것도 실력이에요
전공 입시를 준비할 때 곡 선택에도 이 손가락이 영향을 줬어요. 입시곡을 고를 때 5번 손가락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곡은 되도록 피하려고 했어요. 바깥쪽 손가락으로 크고 무거운 화음을 계속 쳐야 하는 곡보다는, 제 손으로 표현하기 좋은 곡을 골랐어요.
약점을 피해 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손 크기나 손가락 굵기는 연습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렇다면 그 손으로 가장 잘 들리는 곡을 찾는 것도 실력의 일부예요. 열심히 연습하는 것과 곡을 잘 고르는 것, 둘 다 필요했어요.
손이 작거나 손가락이 약한 학생이 시험이나 대회를 준비한다면, 곡을 정할 때 선생님과 이 부분을 꼭 같이 이야기해 보는 게 좋아요. 같은 난이도라도 손에 맞는 곡과 안 맞는 곡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