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전공 입시 준비하던 시절 이야기

입시가 여름이었다면 겨울바람이 덜 무서웠을까

입시곡 목록에 쇼팽 에튀드 작품 25의 11번이 들어 있었어요. 흔히 겨울바람이라고 부르는 곡이에요. 제목부터 춥다 보니 입시철 찬 공기와 묘하게 겹쳐서, 지금 생각해도 그 곡을 떠올리면 손끝이 먼저 시려 오는 느낌이 들어요.

이 곡은 1836년에 작곡되어 이듬해인 1837년 작품 25의 다른 에튀드들과 함께 출판됐어요. 겨울바람이라는 이름은 쇼팽이 직접 붙인 게 아니라 곡의 분위기를 보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고요. 그런데 쇼팽은 폐가 약해서 겨울 추위와 바람을 유난히 힘들어했다고 해요. 그런 사람이 남긴 곡을 하필 한겨울에 붙들고 있었으니, 별명 하나가 괜히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곡은 아주 느린 네 마디로 조용히 시작해요. 그 네 마디가 끝나면 바로 빠르고 힘차게 넘어가는데, 그때부터 오른손이 16분음표로 건반 위를 쉬지 않고 휘몰아쳐요. 끝날 때까지 숨 돌릴 틈이 거의 없어요. 그동안 왼손은 낮은 음역에서 무겁게 멜로디를 끌고 가야 하고요. 오른손은 빠르고 정확해야 하고 왼손은 노래가 들려야 하니, 양손이 전혀 다른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곡이에요. 쇼팽 에튀드 중에서도 손꼽히게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에튀드라고 하면 보통 손가락 훈련용 연습곡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쇼팽은 에튀드를 테크닉만 기르는 곡으로 쓰지 않고, 무대에서 그대로 연주해도 손색없는 작품으로 만들었어요. 입시곡으로 자주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손가락이 얼마나 돌아가는지와 음악을 얼마나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한 곡 안에서 같이 보여 줘야 하니까요. 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둘 중 하나만 잘해서는 넘어갈 수가 없는 곡이에요.

손가락이 가늘어서 원망했던 시간

연습은 주로 피아노 연습실에서 했어요. 집보다 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어서 연습실이 좋긴 했는데, 문제는 제 몸이었어요. 그때는 체력이 정말 받쳐 주지 않았어요. 오른손이 끝까지 달려야 하는 곡인데 중간쯤 가면 팔이 먼저 지쳐 버렸어요.

손가락도 원망을 참 많이 했어요. 제 손가락은 가늘고 힘이 없는 편이었거든요. 겨울바람은 빠르기만 한 곡이 아니라, 빠른 와중에도 한 음 한 음 또렷하게 들려야 해요. 손가락 힘이 부족하면 음이 뭉개지거나 흐려지기 쉬워요. 다른 친구들의 손을 보면 왜 나는 이렇게 타고났을까 싶었어요. 연습량으로 채우려고 해도 체력이 따라 주지 않으니,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어요.

여기에 추위까지 더해졌어요. 입시가 겨울에 있다 보니 연습하는 계절도 늘 추웠어요. 추운 날에는 손이 금방 굳어서 몸을 풀고 손을 데우는 데만도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서 혼자 막연하게 이런 상상을 자주 했어요. 입시가 여름에 있으면 손도 안 굳고 훨씬 좋을 텐데. 지금 보면 웃긴 상상이지만 그때는 꽤 진지했어요. 곡이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날씨만이라도 내 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손이 차가우면 손가락 움직임이 둔해지고, 둔해진 손으로 빠른 곡을 치면 실수가 늘어요. 실수가 늘면 마음이 급해지고, 급해지면 힘이 들어가서 손이 더 굳는 악순환이 생기기도 해요. 겨울바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오른손이 쉬지 않는 곡은 그 영향을 더 크게 받아요. 따뜻한 날이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작은 흔들림도 추운 날엔 크게 느껴졌어요.

솔직히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손가락이 가늘고 힘이 약한 아이를 만나면 그때 제 모습이 겹쳐 보여요. 손이 약하다고 피아노를 못 치는 건 아니지만, 같은 곡을 칠 때 남들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런 아이가 속도를 못 낼 때 재촉하는 말이 잘 안 나와요.

하루를 버티게 해 준 상상

힘들 때마다 붙잡았던 게 하나 있었어요. 피아노 선생님이 된 제 모습을 상상하는 거였어요. 언젠가 아이들 앞에 앉아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오늘 하루만 더 버티자는 마음으로 연습실에 갔어요. 거창한 목표라기보다는 그 장면 하나가 그날 연습을 끝까지 하게 만드는 힘이었어요.

겨울바람은 결국 체력과 손가락 힘, 그리고 정확함을 오래 유지하는 싸움이라 하루 이틀 바짝 한다고 되는 곡이 아니에요. 매일 조금씩 쌓는 수밖에 없어요. 그 하루하루를 채울 이유가 필요했고, 저한테는 그게 선생님이 되는 상상이었어요.

그리고 그 상상은 정말 지금의 일이 됐어요. 아이들 레슨을 오래 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입시는 여전히 겨울에 실기를 보죠.지금도 입시보는 친구들은 핫팩에 손을 녹이며 심장 떨리며 순서를 기다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