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곡 하나에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어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였는데, 곡이 끝난 뒤 진행자가 들려준 뒷이야기가 곡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풀어보려고 해요.

가난한 천재, 슈베르트의 삶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서른한 살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간 작곡가예요. 평생 자기 집 한 채 없이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고, 안정적인 후원자나 직장도 없었다고 해요. 그가 기댈 수 있었던 건 그를 아꼈던 친구들과, 그들이 모여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던 작은 모임뿐이었다고 합니다. 시인, 화가, 배우 같은 친구들이 돌아가며 그의 숙식을 챙겨줬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그만큼 슈베르트 혼자서는 생계를 감당하기 벅찬 형편이었다는 뜻이겠죠. 이런 모임을 사람들은 훗날 ‘슈베르티아데’라고 부르게 됐는데, 정식 연주회장도 없이 지인의 거실에서 열리던 이 소박한 자리가 오히려 그의 음악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고 해요. 살아있는 동안 그의 음악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출판사들은 그의 곡을 헐값에 사들이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루에도 몇 곡씩 써낼 만큼 다작한 작곡가였고, 평생 남긴 가곡만 육백 곡이 넘는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에요.
이 부분을 정리하면서 좀 웃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이 하루에 몇 곡씩 곡을 써냈다는 게,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냥 워커홀릭 그 자체거든요. 근데 그 절박함이 오히려 육백 곡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하면, 없어서 오히려 더 쏟아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짠하게 느껴집니다. 저였으면 안정적인 벌이 하나 없이 그렇게 계속 창작에만 매달릴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메뉴판 뒤에 적힌 세레나데
1826년 여름, 슈베르트는 친구들과 빈 근교 배링이라는 마을을 걷다가 선술집에 들렀다고 해요. 그 자리에서 친구 티체가 갖고 있던 셰익스피어 희곡 속 노래 구절을 우연히 보게 됐고, 그 즉시 멜로디가 떠올라 곡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마침 오선지가 없었던 탓에, 눈앞에 놓여 있던 메뉴판 뒷면에 급하게 줄을 그어 음표를 적어 내려갔다는 전설 같은 일화예요. 술잔이 오가고 사람들이 떠드는 시끌벅적한 자리에서, 정작 그의 머릿속은 오직 멜로디로만 가득 차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곡이 바로 ‘들어라, 들어라 종달새를’로 알려진 그의 세레나데입니다. 다만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여러 음악 자료를 찾아보면, 이 일화는 후대에 조금씩 살이 붙은 전설에 가깝다는 평가도 함께 실려 있어요. 그러니 역사적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슈베르트라는 사람과 그의 음악을 기억하는 하나의 이야기로 즐기는 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난이 남긴 음악, 죽은 뒤에야 인정받은 이유
슈베르트의 가난은 살아있을 때보다 세상을 떠난 뒤에 더 뚜렷하게 드러났어요. 1828년 11월, 서른한 살의 나이로 형 페르디난트의 집에서 눈을 감았는데, 당시 그가 남긴 재산은 옷가지 몇 벌과 악보 뭉치가 전부였다고 전해집니다. 형 페르디난트는 동생이 남긴 방대한 악보 대부분을 출판업자 안톤 디아벨리에게 넘겼고, 지금은 명곡으로 꼽히는 현악 오중주나 피아노 트리오 같은 작품들도 당시에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팔려나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레이제 플레엔 마이네 리더’로 시작하는 또 다른 세레나데 역시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다른 가곡들과 함께 묶여 ‘백조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곡입니다. 정작 이 아름다운 곡이 세상에 알려질 때, 그 곡을 쓴 사람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던 셈이죠. 심지어 몇몇 걸작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다락방이나 상자 속에서 우연히 발견되기도 했다고 하니, 그의 음악이 지금 우리 귀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쳐야 했는지도 새삼 실감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가난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포장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슈베르트가 남긴 방대한 음악은 가난 ‘덕분’이 아니라 가난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결과에 가깝고, 조금만 형편이 나았더라면 그는 더 많은 곡을 더 편안하게 남길 수 있었을 사람이었을 거예요. 다만 종이 한 장 없는 순간에도 떠오른 멜로디를 놓치지 않았던 태도, 그리고 형편과 상관없이 곡 하나하나에 담아낸 진심만큼은 가난도 끝내 어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완벽한 환경이 갖춰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손에 쥔 것으로 일단 시작해보는 태도, 슈베르트의 메뉴판 세레나데가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어쩌면 그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 Hollywood Bowl Program Notes(hollywoodbow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