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얘기, 진짜 할 때마다 신기하다. 귀가 안 들리는데 그런 곡을 어떻게 썼을까. “천재라서”라고 퉁치고 넘어가기엔 좀 아쉬워서, 오늘은 이 얘기 좀 풀어보려고 한다.

죽음까지 생각했던 하일리겐슈타트의 밤
베토벤은 20대 후반부터 귀가 이상했다. 처음엔 그냥 이명 정도였는데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엔 필담으로만 대화할 수 있는 지경까지 갔다. 작곡가한테 청각이란 게 거의 전부인데, 그걸 잃어가는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잘 안 된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는 글을 보면 이때 그가 죽음까지 생각했다는 게 그대로 드러난다. 참고로 이 유서, 동생들한테 남기려고 쓴 건데 정작 부치지도 않고 평생 서랍에 넣어두기만 했다고 한다. 죽은 후에 유품 정리하다가 발견됐다고 하니 참 얼마나 개인적인 기록이었을지 상상도 안 간다.
난청 원인은 사실 지금도 딱 이거다 하고 정리가 안 됐다. 납중독설이 그나마 많이 언급되는 편인데, 당시 마시던 와인이나 물에 납 성분이 있었을 거라는 얘기다. 실제로 유해에서 납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연구도 있긴 하다. 매독설, 자가면역질환설, 파제트병설도 나오는데 뭐 하나로 확실히 결론이 난 건 아니고. 다만 그가 젊을 때부터 배도 자주 아프고 소화도 잘 안 됐다는 기록은 꽤 여러 곳에서 나온다. 몸 전체가 그냥 오래 고생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몸으로 소리를 느끼려 했던 여러 시도
그런데도 곡은 계속 썼다. 제일 유명한 게 나무 막대기 얘기 아닐까. 막대기 한쪽을 입에 물고 반대쪽을 피아노 몸통에 대서, 소리 대신 진동을 턱뼈로 느꼈다는 거다. 요즘 말로 하면 골전도인데, 그땐 그런 원리를 알 리도 없었을 텐데 저걸 스스로 찾아냈다는 게 좀 대단하다 싶다.
베토벤은 소리도 못 듣는데 어떻게 교향곡 9번을 완성했을까
피아노 다리를 톱으로 잘라서 바닥에 붙였다는 얘기도 있다. 건반 두드릴 때 나는 진동이 바닥으로 더 잘 퍼지게 하려고 그랬다는 건데, 맨발로 서서 그 떨림을 발로 느끼면서 곡을 다듬었다고 한다.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좀 갈리는 얘기긴 하다. 근데 어쨌든 소리를 몸으로라도 느끼려고 별 시도를 다 했다는 건 여러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나온다.
그리고 완전히 안 들리기 전, 그러니까 아직 조금은 남아있던 시기엔 보청 나팔도 썼다. 나팔처럼 생긴 금속 기구를 귀에 대는 건데, 친구였던 악기 제작자 요한 네포무크 멜첼이 여러 개 특별 제작해줬다고 한다. 지금 빈 베토벤 박물관 가면 이 나팔들이 실물로 전시돼 있다는데, 크기랑 모양이 다 제각각인 걸 보면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계속 이것저것 시도했구나 싶다.
작곡 방식도 바뀌었다. 예전엔 즉흥연주 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면, 청력 잃은 뒤로는 머릿속으로 소리를 상상해서 바로 악보에 옮기는 식으로 갔다. 늘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면서 떠오르는 멜로디를 적었는데 이게 지금도 수십 권이 남아있다. 그거 보면 같은 멜로디를 수십 번씩 고쳐 쓴 흔적이 있다고 한다. 한 방에 영감이 터진 게 아니라, 지겹도록 고치고 또 고친 결과물이었던 거다.
말년의 소통과 들리지 않아서 오히려 자유로워진 음악
‘대화록’이라는 자료도 있다. 말년에 대화가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방문객이 노트에 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을 적으면 베토벤이 읽고 입으로 대답하는 식으로 소통했다. 이때 쓰인 노트들이 지금도 꽤 남아있는데, 베토벤 본인 대답은 구두라 기록이 안 남은 경우가 많지만 상대가 적은 질문만 봐도 그가 어떤 주제로 얘기했는지, 성격이 얼마나 예민하고 까다로웠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고 한다.
청력 완전히 잃은 후기에 쓴 현악사중주들은 학자들이 따로 떼서 다루는 경우가 많다. 형식도 파격적이고 화성도 당시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실험적이었는데, 일부에서는 이걸 두고 소리를 못 들으니 오히려 기존 관습에서 자유로워진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익숙한 소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 순수하게 머릿속 구상만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교향곡 9번, ‘합창’으로 유명한 그 곡도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썼다. 초연 때 일화가 특히 유명한데, 연주 끝나고 관객들이 열렬히 박수치고 있는데 정작 베토벤은 그 소리를 못 들어서 계속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고 한다. 옆에 있던 성악가가 몸을 돌려세워주고 나서야 관객들이 기립박수 치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고. 이 장면, 들을 때마다 좀 뭉클해서 눈물까지 난다.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설명 안 되는 집요함
이런 얘기들 보면, 베토벤이 대단했던 건 그냥 타고난 재능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극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자기만의 방법을 끝까지 찾아낸 그 집요함, 그게 진짜였다 싶다. 소리를 못 듣는 작곡가가 역사에 남을 명곡을 썼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그 뒤에 나무 막대와 진동, 보청 나팔, 그리고 수십 번의 수정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면 그 음악이 좀 다르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상 내가 느낀점도 좀 곁들여서 써봤는데 궁금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음 한다.
참고: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베토벤 대화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