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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는 왜 최고 인기 작곡가일 때 갑자기 은퇴했을까

열여덟 살에 시작해 서른일곱 살에 멈춘 질주

조아키노 로시니는 열여덟 살에 첫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 뒤로, 놀라운 속도로 작품을 쏟아냈어요. 열아홉 해 동안 무려 서른아홉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1812년부터 1819년까지 단 팔 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나온 결과물이었어요. 세비야의 이발사, 신데렐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같은 작품들이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그는 당대 가장 성공한 오페라 작곡가라는 확고한 지위를 얻었어요.

1824년 프랑스 정부의 초청으로 파리에 정착한 로시니는 이곳에서도 승승장구했어요. 그리고 1829년, 스위스의 전설적인 영웅 빌헬름 텔의 이야기를 담은 대작 오페라 윌리엄 텔을 완성했어요. 이 작품은 무려 여섯 시간에 달하는 대형 오페라로, 이탈리아식 서정성과 프랑스식 장엄한 무대 연출을 결합한 그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았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품을 끝으로 로시니는 오페라 작곡을 완전히 그만둬버렸어요. 겨우 서른일곱 살, 누구보다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였는데 말이지요.

파격적인 계약과 갑작스러운 침묵

흥미로운 건 이 은퇴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된 결정이었다는 점이에요. 로시니는 프랑스 샤를 10세 정부와 협상해,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든 쓰지 않든 상관없이 평생 연금을 받는 파격적인 계약을 따냈어요. 심지어 이 계약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야심작인 윌리엄 텔의 상연 자체를 철회하겠다고 압박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결국 계약은 그의 뜻대로 성사됐고, 공연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어요. 이후 그는 계약서를 손에 쥔 채 유유히 볼로냐로 휴가를 떠났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고작 서른일곱, 남은 인생의 절반도 채 살지 않은 시점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왜 이렇게 완벽한 순간에 붓을 꺾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어요. 음악학자들은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하는데, 그중 하나는 단순한 소진이에요. 십구 년 동안 서른아홉 편의 오페라를 쏟아냈으니,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을 거라는 해석이죠. 실제로 이 시기 그는 만성적인 병치레에 시달리고 있었고, 나중에서야 건강을 회복했지만 이미 무대를 떠나겠다는 마음은 굳어진 뒤였어요.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감각

또 다른 설명은 당시 파리 예술계의 지형 변화와 관련이 있어요. 음악학자 필립 고셋은 로시니가 정치적으로 가까웠던 구체제가 1830년 혁명으로 무너진 것, 그리고 자코모 마이어베어 같은 새로운 스타일의 독일 오페라 작곡가가 급부상한 것이 그에게 상당한 상실감을 안겼을 가능성을 지적했어요. 자신이 이끌어온 이탈리아식 오페라의 시대가 저물고, 완전히 다른 감성의 무대가 파리를 장악해가는 걸 지켜보는 일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실제로 로시니는 은퇴 이후에도 종종 새 오페라를 쓸까 고민했다고 전해지지만, 결국 단 한 편도 완성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는 작은 규모의 피아노곡이나 종교음악을 가끔 작곡하는 정도로 창작 활동을 이어갔고, 나머지 시간은 미식과 사교에 쏟았어요. 그는 훗날 자신에 대해 이 세상에 음식보다 더 훌륭한 일은 모른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의 이름을 딴 요리인 투르네도 로시니가 지금까지도 프랑스 고급 레스토랑 메뉴에 남아 있을 정도예요. 오페라 극장의 화려한 조명 대신 식탁 위의 소박한 즐거움을 택한 셈인데, 정작 본인은 이런 변화를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요. 결국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틀에 계속 머무는 것보다,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걸 하며 사는 쪽을 택한 셈인데, 어쩌면 그게 그가 찾은 진짜 행복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가장 화려할 때 스스로 내려온 선택

로시니는 나머지 삶을 파리에서 유명한 미식가이자 사교계 명사로 보내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어요. 은퇴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는 자신의 커리어가 정점을 찍은 바로 그 순간에 스스로 무대를 내려온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에요. 실패해서 밀려난 것도, 재능이 고갈돼서 멈춘 것도 아니라, 가장 빛나는 순간에 제 발로 걸어 나간 셈이에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백오십 년도 더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오페라보다 그 결단 자체를 더 궁금해한다.

참고: Redwood Symphony 프로그램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