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백작을 위한 부탁
18세기 독일 작센 지방, 러시아 대사로 파견되어 있던 카이절링 백작은 평생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이 되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이어졌고, 그런 그를 위해 늘 곁을 지킨 사람이 있었다. 백작의 저택에 머물며 개인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일하던 어린 소년,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였다. 백작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골드베르크는 옆방에 대기하고 있다가 조용히 건반을 두드리며 그를 달래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작은 당시 최고의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게 부탁을 하나 건넨다. 잠 못 이루는 밤에 골드베르크가 연주할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생기가 도는 곡을 하나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바흐는 이 부탁을 받아들여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서른 개의 변주를 엮은 작품을 완성했고, 이것이 오늘날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곡이 되었다.
백작은 이 곡을 무척 아꼈다고 전해지며,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골드베르크를 불러 나의 변주곡을 연주해달라고 청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심지어 그 보답으로 백작이 금화 백 개가 든 황금 잔을 바흐에게 선물했다는 이야기까지 남아 있을 정도다. 한 곡의 음악이 이 정도로 후한 보답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이 작품이 얼마나 특별하게 여겨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설 뒤에 숨은 진실
그런데 이 유명한 일화, 사실은 진위가 확실치 않다. 이 이야기는 바흐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 넘게 지난 1802년, 바흐의 첫 전기를 쓴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남긴 기록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곡이 만들어진 1741년 당시 골드베르크의 나이가 고작 열세 살에서 열네 살 정도였다는 점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신동이었다 해도, 극도로 정교하고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이 대작을 그 어린 나이의 연주자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있다.
더구나 바흐는 이 곡을 출판하면서 정작 카이절링 백작에게 헌정하는 문구를 남기지 않았다. 당시 관례상 위촉을 받은 작품이라면 후원자에게 헌사를 남기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 곡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다. 이런 정황들 때문에 지금 많은 음악학자들은 바흐가 애초에 누군가의 부탁이 아니라, 자신의 건반 음악 시리즈인 클라비어 위붕을 완성하기 위한 순수한 예술적 동기에서 이 곡을 썼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실제로 바흐는 이 곡을 발표하기 몇 해 전부터 이미 하나의 대형 건반 작품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었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구상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다만 완성된 곡을 바흐가 백작에게 선물했고, 이후 골드베르크가 실제로 밤마다 이 곡을 연주해주면서 지금 전해지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덧붙여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잠재우는 곡에서 완벽함의 상징으로
일화의 진위와 별개로, 이 곡이 실제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나의 아리아에서 출발해 서른 개의 변주로 뻗어나갔다가 다시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오는 구조는 마치 하나의 완결된 우주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세 개씩 묶인 변주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도 매번 새로운 표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단순한 자장가를 넘어서는 정교한 건축물에 가깝다. 특히 세 곡마다 한 번씩 등장하는 카논 형식의 변주는 위아래 성부가 정확히 시차를 두고 같은 선율을 반복하는 구조로, 마치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보는 듯한 쾌감을 준다. 실제로 지금도 많은 음악 치료사들이 불면증이나 불안을 겪는 사람들에게 이 곡을 권할 만큼, 원곡이 지닌 진정 효과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300년을 건너온 완벽함
시간이 흐르면서 이 곡은 단순한 수면 보조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훌쩍 뛰어넘었다. 완벽에 가까운 대칭 구조, 그 안에 숨겨진 수학적 정교함, 그리고 서른 개의 변주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까지, 이 곡은 지금 서양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완성도 높은 건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는 데만 팔십 분 가까이 걸리는데도, 지루하다는 인상 대신 오히려 하나의 거대한 여정을 완주한 듯한 감동을 남긴다는 점 또한 이 곡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다. 처음에는 한 귀족의 밤을 달래기 위한 사소한 부탁에서 출발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인류는 3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곡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밤이 종종 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오늘 밤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한번 틀어놓고 잠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0년 전 한 백작을 잠들게 했던 곡이 지금의 나에게도 같은 효과를 줄지, 직접 확인해볼 생각이다.
참고: 베를린 필하모닉 공식 아카이브(berliner-philharmoniker.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