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찾아온 행운
니콜로 파가니니가 아직 명성을 얻기 전, 젊은 시절 그는 도박에 빠져 자신의 바이올린을 저당 잡히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악기 없이는 연주자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에게 어느 날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리보르노에서 열린 한 공연에서 악기가 없던 파가니니를 위해 한 부유한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가 자신의 과르네리 바이올린을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은 이 후원자는 도저히 그 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빌려준 바이올린을 돌려받지 않고 파가니니에게 그대로 선물했다.
1743년 크레모나의 명장 바르톨로메오 주세페 과르네리, 흔히 델 제수라고 불리는 장인이 만든 이 바이올린은 이후 파가니니의 평생 동반자가 된다. 파가니니는 이 악기가 만들어내는 폭발적이고 압도적인 음색에 반해 스스로 캐논, 즉 대포라는 별명을 붙였다. 실제로 이 바이올린은 몸통이 일반적인 바이올린보다 약간 짧고 두꺼우며, 목 부분이 눈에 띄게 휘어진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형태가 밝으면서도 묵직하고 꽉 찬 음색을 만들어내는 비결로 꼽힌다. 파가니니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악기 하나만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도시에 남겨진 마지막 선물
파가니니는 생전에 이미 이 악기의 가치와 상징성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제노바에 이 바이올린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실제로 그의 사후 이 악기는 제노바 시로 넘겨졌다. 개인이 평생을 함께한 악기를 도시 전체에 넘긴다는 결정은 당시로서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단순히 물건 하나를 넘기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유산을 고향 사람들과 영원히 공유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선택이었다.
이후 이 바이올린은 제노바 시청 건물인 도리아 투르시 궁전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이곳에는 파가니니와 관련된 여러 유품과 함께 캐논 바이올린이 전시되어 있으며, 전 세계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과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성지와도 같은 장소로 여겨진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시나 미국 여러 도시로의 특별 순회 전시가 있었을 만큼, 이 악기 하나가 갖는 문화적 무게감은 상당하다.
유리관 안에 갇힌 살아있는 악기
그렇다면 왜 이렇게 귀중한 악기가 자유롭게 연주되지 못하고 유리관 안에 놓여 있는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이 바이올린은 이제 대체 불가능한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300년 가까운 시간을 견뎌온 목재와 도료는 조금의 충격이나 습도 변화에도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도난이나 파손의 위험까지 고려하면 상시로 꺼내놓고 연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평소에는 여러 명의 보안 요원이 지키는 유리 진열장 안에 보관되고, 꺼낼 때마다 흰 장갑을 낀 전담 관리자가 조심스럽게 다루는 정교한 절차를 거친다.
다만 완전히 침묵하는 골동품으로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악기는 오랫동안 연주하지 않으면 오히려 소리가 죽고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전담 관리자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직접 꺼내어 연주하며 상태를 점검한다. 또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실력을 겨루는 파가니니 콩쿠르의 우승자에게는 이 캐논 바이올린으로 직접 연주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유리관 속에 잠들어 있다가도 특별한 순간이면 다시 깨어나 두 세기 전과 같은 폭발적인 소리를 들려주는 셈이다.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살아있는 상징
결국 캐논 바이올린이 유리관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그 악기가 잊혔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만큼 소중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파가니니라는 한 인간의 재능과 삶이 응축된 이 악기는 지금도 여전히 소리를 낼 수 있는 살아있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와 상징성을 켜켜이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유리관 너머로 이 악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단순한 골동품이 아니라,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숨결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참고: Tarisio Cozio Archive(taris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