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가르치다 보면 어머님들께 정말 자주 받는 질문이 있어요. 우리 애 혹시 절대음감 아니에요? 아이가 TV에서 들은 노래를 피아노로 비슷하게 따라 쳤다거나, 동생이 장난감 피아노를 누르면 무슨 음인지 맞혔다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꼭 이 질문이 나와요. 부모 입장에서는 혹시 우리 아이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기대하게 되는 순간이죠.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요.
절대음감과 상대음감은 달라요
절대음감은 아무런 기준음 없이 어떤 소리를 듣고 그게 정확히 무슨 음인지 바로 알아내는 능력이에요. 피아노 소리든,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든, 자동차 경적이든 상관없어요. 저는 이걸 컴퓨터에 주파수가 입력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해요. 머릿속에 각 음의 높이가 이미 정해진 값으로 저장되어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값과 맞춰 보고 정확하게 집어내는 거예요.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도, 시끄러운 곳에서도 틀리지 않아요.
상대음감은 이것과 달라요. 기준이 되는 음 하나를 알려 주면, 그 음과의 거리를 듣고 다른 음을 찾아내는 능력이에요. 도를 들려준 다음 어떤 음을 치면 그게 도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계산해서 솔이구나 하고 아는 거죠. 사실 음악을 하는 데는 이 상대음감이 훨씬 중요해요. 화음을 듣고, 선율의 흐름을 따라가고, 다른 악기와 음을 맞추는 일은 대부분 상대음감으로 하거든요. 전공자 중에도 절대음감이 없는 사람이 훨씬 많고, 그래도 연주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절대음감은 보통 타고나요
제 경험으로는 절대음감은 보통 타고나요. 물론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음악을 접하고 청음 훈련을 하면 어느 정도는 따라와요. 음을 맞히는 정확도가 올라가고, 익숙한 악기 소리는 꽤 잘 알아듣게 되기도 해요. 그런데 그건 훈련으로 다듬어진 감각이지, 앞에서 말한 주파수처럼 머릿속에 정해져 있는 진짜 절대음감과는 조금 달라요. 진짜 절대음감을 가진 아이들은 따로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처음부터 그냥 알아요. 오히려 그 아이들은 왜 다른 사람은 이걸 모르는지 이상하게 여기기도 해요. 그래서 아이가 피아노 음 몇 개를 맞혔다고 바로 절대음감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워요. 매일 듣는 집 피아노 소리에 익숙해져서 맞히는 경우도 많거든요. 다른 악기 소리나 생활 속 소리까지 아무 기준 없이 정확하게 짚어 내는지를 오래 지켜봐야 알 수 있어요.
아빠를 닮았다던 아이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는 악보 읽는 것도, 새로운 곡을 익히는 것도 많이 느린 편이었어요. 그런데 어머님은 아이가 아빠를 닮아서 절대음감이라고 굳게 믿고 계셨어요. 아이 아빠가 색소폰 연주자였거든요. 음악 하는 아빠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당연히 귀가 특별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레슨을 해 보니 그 아이는 절대음감은커녕 상대음감도 많이 약했어요. 기준음을 알려 주고 바로 옆 음을 쳐도 높은지 낮은지를 자주 헷갈렸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어머님께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굳이 말씀드려서 기분 상하시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거든요. 아이가 자라면서 언젠가는 어머님도 자연스럽게 아시게 될 테고, 실망하시는 날이 오더라도 그때쯤이면 아이가 또 다른 음악적 즐거움을 찾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그 시기에 마음이 꽤 심란했어요. 선생님으로서 정확하게 말씀드리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아이와 어머님이 피아노를 즐겁게 이어 가는 걸 먼저 지켜 드리는 게 맞는 건지 한동안 고민했거든요. 결국 저는 말 대신 레슨으로 채우는 쪽을 택했어요. 상대음감은 훈련으로 충분히 키울 수 있으니까, 그 아이와는 기준음을 듣고 따라 부르기, 두 음 중 어느 쪽이 높은지 맞히기 같은 기초 청음 연습을 꾸준히 했어요. 눈에 띄게 빠르진 않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였어요.
절대음감이 있으면 분명 편한 점이 있어요. 그렇다고 없다고 음악을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절대음감 있는 아이들 중에는 조율이 살짝 어긋난 피아노나 다른 높이로 조율된 악기 앞에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어요. 귀가 너무 정확해서 생기는 불편함이죠. 음악을 오래 즐기는 데 필요한 건 결국 특별한 귀보다 꾸준히 듣고 따라 해 보는 습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누가 물으면, 저는 지금도 절대음감은 타고난다고 대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