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한 달 전, 두 아이의 출발
대회 곡이 정해지면 아이들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어요. 악보를 받자마자 몇 번 쳐 보고는 금방 익숙해지는 아이, 그리고 악보 읽는 것부터 한참 걸리는 아이요.
손이 빠른 아이들은 처음 몇 주 동안 정말 잘 쳐요. 테크닉이 좋아서 어려운 부분도 금세 손에 익히고, 소리도 제법 그럴듯하게 나와요.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이 중에는 자기가 피아노를 엄청 잘 친다고 생각해서 연습을 소홀히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너무 쉬워서 지겹다는 말까지 할 때면, 솔직히 가르치는 입장에서 얄밉기도 해요. 곡을 다 쳤다고 해서 곡이 완성된 건 아닌데, 그 차이를 아직 모르는 거죠.
반대로 악보 보는 게 서툰 아이들은 처음엔 한 페이지 넘기는 데도 오래 걸려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매주 정직하게 연습해 와요. 지난주에 막혔던 마디가 이번 주엔 조금 나아져 있고, 그다음 주엔 또 조금 나아져 있어요. 눈에 띄게 빠르진 않아도 꾸준히 쌓이는 게 보여요.
이 시기에 저도 고민이 많아요. 잘 치는 아이에게 연습하라고 잔소리를 하면 “이미 다 칠 수 있는데요” 하는 표정이 돌아오고, 느린 아이를 너무 다그치면 대회 전부터 기가 죽을까 봐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한 달 전에는 두 아이 모두에게 같은 숙제를 내줘요.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세 번 이어서 쳐 보기예요.
대회 2주 전, 차이가 뒤집히기 시작할 때
대회가 가까워지면 두 아이의 모습이 서서히 달라져요. 연습을 게을리한 아이는 여전히 잘 치긴 하는데, 칠 때마다 틀리는 곳이 달라요. 오늘은 여기서, 내일은 저기서 실수가 나와요. 손은 곡을 알고 있지만 아직 몸에 완전히 붙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이런 상태로 무대에 오르면 긴장한 순간 그 빈틈이 그대로 드러나요.
성실하게 연습한 아이는 이 무렵이 되면 곡이 몸에 배어 있어요. 음악적인 표현은 아직 어설프고 셈여림도 섬세하지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칠 수 있어요. 저는 이 시기에 이 친구에게 표현을 욕심내기보다 지금 치는 그대로를 지키라고 말해 줘요. 억지로 새로운 걸 더하다가 흔들리는 것보다, 익힌 걸 끝까지 해내는 게 대회에서는 훨씬 중요하거든요.
한 달 전에 내준 세 번 이어 치기 숙제도 이때 결과가 확연히 갈려요. 성실한 아이는 세 번 모두 비슷하게 쳐 내는데, 연습을 미룬 아이는 첫 번째는 잘 치다가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실수가 늘어나요. 한 번 잘 치는 것과 여러 번 똑같이 잘 치는 것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나는 거예요.
대회 날, 우직함이 이기는 순간
대회 날 결과가 제 예상을 뒤집은 적이 있어요. 테크닉은 누가 봐도 좋았던 아이가 무대에서 실수를 여러 번 했고, 악보 읽기부터 느렸던 아이는 우직하게 곡을 끝까지 쳐 냈어요. 표현은 조금 투박했지만 멈추거나 흔들리는 곳이 없었죠. 그리고 그 아이가 더 좋은 상을 받았어요.
그날 저는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재능이 있어도 준비하지 않으면 무대에서 지켜 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느려도 정직하게 쌓은 연습은 결국 무대에서 제 몫을 한다는 걸 다시 확인한 날이었거든요. 상을 받고 어리둥절해하던 아이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동안 자기보다 잘 치는 친구들을 보며 주눅 들었던 아이였는데, 그날만큼은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있었어요.
대회가 끝난 뒤, 진짜 배움이 시작될 때
그렇다면 연습을 게을리한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결과를 받아 든 날은 많이 속상해했어요. 자기보다 못 친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더 좋은 상을 받았으니 자존심이 상했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경험을 한 번 겪은 아이들이 이후에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직접 당해 봐야 연습이 왜 필요한지 몸으로 알게 되거든요. 선생님이 백 번 말하는 것보다 무대에서 한 번 흔들려 보는 경험이 훨씬 크게 남아요. 그 뒤로는 쉽다고 투덜대던 입이 쏙 들어가고, 다음 대회를 준비할 때는 누구보다 먼저 연습을 시작하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대회 결과가 아쉽게 나온 아이에게 너무 서둘러 위로하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무대에서 어디가 흔들렸는지 같이 떠올려 보고, 다음에는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이야기해요. 그 속상함이 다음 연습의 힘이 되도록요.
혹시 아이가 대회를 앞두고 너무 쉽다며 연습을 미루고 있다면, 잘 친다는 칭찬보다 끝까지 틀리지 않고 칠 수 있는지 한번 들어 보자고 말해 주세요. 잘 치는 것과 무대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걸, 아이도 곧 알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