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처럼 흐릿한 화음
레슨 중에 아이 하나가 드뷔시의 달빛을 들려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직접 치기엔 아직 이른 곡이라 제가 대신 연주해줬는데, 다 듣고 나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선생님, 이 곡은 왜 이렇게 안개 낀 것처럼 흐릿해요. 화음이 딱 떨어지지 않고 계속 번지는 느낌이에요. 그 말이 참 정확하다고 생각했어요. 드뷔시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각이거든요. 그리고 그 흐릿함, 그 번지는 느낌 때문에 사람들은 드뷔시를 인상주의 화가들과 자연스럽게 묶어서 이야기하곤 해요. 특히 모네와 함께요.
정작 본인은 싫어했던 별명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드뷔시 본인은 자신의 음악이 인상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좀 짜증스러워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자신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상징주의 시인들, 그러니까 말라르메 같은 문학가들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어요. 그런데도 세상은 그를 음악계의 모네라고 불렀고, 그 별명은 지금까지도 그를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남아 있어요.
만난 적 없는 두 사람
더 흥미로운 부분은 이거예요. 드뷔시와 모네가 실제로 만나서 교류했다거나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 파리라는 같은 공간에서 활동했지만, 각자의 예술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독립적으로 발전했어요. 모네는 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순간을 캔버스에 담기 위해 같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서서 루앙 대성당을 그리고 또 그렸어요. 아침의 대성당과 저녁의 대성당은 같은 건물인데도 전혀 다른 색으로 표현됐죠. 드뷔시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그는 하나의 선율을 명확하게 밀고 나가기보다, 화음과 음색이 서로 겹치고 번지면서 만들어내는 순간의 분위기를 포착하려고 했어요.
닮아버린 시대의 공기
두 사람이 서로를 몰랐다고 해서 우연이라고 하기엔, 이들이 살던 시대의 공기 자체가 그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거예요. 19세기 말 파리는 정확하고 사실적인 재현보다 순간의 인상, 감각적인 여운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로 옮겨가고 있었어요. 화가들은 사물의 윤곽을 흐리기 시작했고, 음악가들은 화성의 경계를 흐리기 시작했어요. 드뷔시가 온음음계를 즐겨 쓰고 전통적인 화성 진행의 규칙을 과감히 깬 것도 이런 시대적 흐름과 맞닿아 있어요. 명확한 해답이나 결론으로 가기보다, 그 사이의 모호함과 여운 자체를 음악의 목적으로 삼은 거예요.
레슨실에서 아이들에게 하는 설명
이 곡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굳이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요. 그냥 이렇게 말해요. 드뷔시는 하나의 답을 딱 정해서 들려주기보다, 여러 개의 느낌을 동시에 들려주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고요. 그래서 화음 하나를 쳐도 그 안에 여러 색이 섞여 있는 것처럼 들리는 거라고요. 그러면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그 순간부터 손가락에 힘을 조금 빼고, 페달을 더 조심스럽게 밟기 시작해요. 설명보다 비유가 더 잘 통할 때가 있다는 걸 이럴 때마다 새삼 느껴요.
수련과 달빛
드뷔시의 달빛이나 아라베스크 같은 곡을 들어보면, 화가가 붓으로 색을 겹겹이 올리듯 음이 겹겹이 쌓이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명확한 윤곽선 대신 은은한 번짐이 있고, 그 번짐 안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들어요. 모네의 수련 연작을 가까이서 보면 형태가 거의 보이지 않고 색의 덩어리만 남아 있는데, 멀리서 보면 그제야 수련과 물빛이 살아나는 것처럼요. 드뷔시의 음악도 비슷해요. 한 음 한 음을 따로 분석하려 하면 오히려 흐름을 놓치고, 전체를 흘려보내듯 들을 때 비로소 그 분위기가 온전히 다가와요.
결국 드뷔시와 모네는 손을 맞잡고 같은 이론을 만든 동료가 아니라, 같은 시대의 공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호흡한 두 예술가였던 셈이에요. 서로를 몰랐어도 결과적으로 닮아버린 두 세계라는 점이, 오히려 이 이야기를 더 오래 곱씹게 만드는 것 같아요.
참고: 클래식 음악 저널(classical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