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손목이 아파요.” 부르크뮐러 25번 중에서 이 말을 가장 자주 듣는 곡을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아라베스크를 고를 거예요. 진도는 분명 잘 나갔는데, 연습을 많이 해 올수록 손목이 아프다고 하는 친구들이 생기거든요. 열심히 한 아이가 오히려 아파하는 걸 보면 가르치는 입장에서 참 마음이 쓰여요. 연습량이 문제가 아니라 치는 방법이 문제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짧지만 까다로운 곡, 아라베스크
아라베스크는 독일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한 작곡가 프리드리히 부르크뮐러의 25개의 연습곡 작품 100 가운데 두 번째 곡이에요. 가단조에 빠르기말은 알레그로 스케르찬도, 빠르고 장난스럽게 치라는 뜻이죠. 곡 이름처럼 덩굴무늬가 이어지듯 빠른 음들이 구불구불 굴러가고, 그 사이사이 짧게 끊어 치는 화음이 톡톡 들어가요.
악보만 보면 음이 많지 않아 쉬워 보이는데, 막상 쳐 보면 생각보다 어려워요. 빠른 음들은 고르게 흘러가야 하고, 끊어 치는 음은 짧고 또렷해야 하고, 셈여림도 갑자기 커졌다 작아졌다 해요. 결국 이 곡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절도 있는 표현이에요.
진도는 나가는데 소리가 흐물흐물해지는 이유
많은 아이들이 이 곡의 음은 금방 익혀요. 그런데 손목이 아직 약한 친구들이나, 어디서 힘을 주고 어디서 빼야 하는지 아직 몸으로 익히지 못한 친구들은 소리에 절도가 없어요. 끊어야 할 음이 길게 늘어지고, 빠른 음들은 뭉개지면서 곡 전체가 흐물흐물하게 들리죠.
그리고 이 곡에서 유독 자주 보이는 모습이 있어요. 팔을 크게 흔들면서 치는 거예요. 빠르게 치려는 마음은 급한데 손가락 힘만으로는 부족하니, 팔 전체를 위아래로 휘두르며 건반을 누르는 거죠. 겉으로 보면 열정적으로 치는 것 같지만, 이렇게 치면 힘이 손끝에 모이지 않고 팔과 손목에서 흩어져요. 소리는 둔해지고, 반복할수록 손목에 부담이 쌓여요. 연습을 많이 한 아이들이 손목이 아프다고 하는 건 대부분 이 때문이에요.
손목이 아직 약한 저학년 친구들은 더 그래요. 손가락 끝을 단단하게 세우는 힘이 부족하니 손목이 자꾸 아래로 처지고, 그걸 팔 힘으로 메우려다 보니 동작이 점점 커져요. 본인은 열심히 치는데 소리는 둔해지니 아이도 답답해하고요.
손목이 아프다고 할 때 제가 먼저 하는 것
아이가 손목이 아프다고 하면 저는 그날 연습을 바로 멈춰요. 아픈데 참고 치면 잘못된 습관이 더 굳어지거든요. 그리고 아래 순서로 차근차근 다시 잡아 줘요.
먼저 팔을 멈추는 연습이에요. 팔꿈치와 팔은 편안하게 두고, 손가락만 움직여서 빠른 음들을 천천히 쳐 보게 해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팔을 안 쓰면 소리가 안 난다고 당황하는데, 속도를 확 늦추면 손가락만으로도 충분히 소리가 난다는 걸 금방 느껴요.
다음은 힘을 주는 곳과 빼는 곳을 나누는 연습이에요. 끊어 치는 화음에서는 손끝으로 건반을 짧게 톡 치고, 친 직후에 바로 손목 힘을 빼요. 힘을 줬다가 곧바로 풀어 주는 이 감각이 생겨야 소리가 짧고 또렷해지면서 손목도 덜 지쳐요.
그다음에 빠른 음들을 몇 개씩 묶어서 연습해요. 한 번에 한 줄을 다 치려고 하지 말고, 한 묶음씩 끊어서 고르게 쳐 본 뒤 조금씩 이어 붙이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속도를 올려도 음이 뭉개지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연습 시간이에요. 이 곡은 짧게 여러 번 나눠 치는 게 좋아요. 한 번에 오래 반복하기보다 조금 치고 손을 털어 쉬었다가 다시 치게 해요. 속도는 손목이 편안한 상태에서 조금씩 올려야 하고요.
빨리 치는 것보다 가볍게 치는 곡
아라베스크를 제대로 익힌 아이들은 소리가 확 달라져요. 팔은 조용한데 손끝에서 음들이 가볍게 튀어 오르고, 끊어 치는 화음이 또렷하게 살아나요. 그때 아이들 스스로도 “어, 이번엔 손목이 안 아파요” 하면서 신기해하죠. 그 순간이 저는 참 좋아요. 연습을 많이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이가 몸으로 알게 되는 순간이니까요.
혹시 집에서 아이가 이 곡을 치다가 손목이 아프다고 하면, 억지로 더 치게 하지 말고 잠깐 쉬게 해 주세요. 그리고 팔이 크게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살펴봐 주세요. 그것만 고쳐도 아라베스크는 훨씬 즐거운 곡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