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트 슈만이 세상을 떠난 건 1856년입니다. 정신병원에서 생의 마지막 2년을 보내고, 클라라는 남편이 숨을 거두기 이틀 전에야 겨우 그를 만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스무 살의 젊은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있었습니다. 슈만이 재능을 알아보고 세상에 소개한 제자였고, 남편이 무너져가는 몇 년 동안 클라라와 아이들을 곁에서 돌봐준 사람이었습니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음을 궁금해했습니다. 두 사람은 왜 결혼하지 않았을까.
스승의 아내를 향한 마음
브람스가 클라라를 사랑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문장들이 남아 있습니다.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하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브람스는 클라라를 향한 마음을 품고 있었고, 스승의 병세가 깊어질수록 그 마음은 더 커져갔다고 합니다. 14살이라는 나이 차이도, 스승의 아내라는 위치도 그 감정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던 셈입니다. 스승의 재능을 존경하는 마음과 그의 아내를 향한 감정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게, 젊은 브람스에게는 꽤 혼란스러운 시기였을 것 같습니다.
멀어진 두 사람, 그리고 슈만의 아내로 남은 클라라
하지만 슈만이 세상을 떠난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브람스의 적극적이던 구애는 점점 잦아들었고, 클라라 역시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클라라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도, 세상을 떠난 후에도 슈만의 아내로 남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슈만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고 그의 유작을 정리하는 일에 남은 삶의 상당 부분을 쏟았고, 스스로도 브람스의 애정을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지켜냈다는 점이, 클라라라는 사람의 단단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한 현실적인 이유들
여기에는 몇 가지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클라라는 이미 여덟 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였고, 유럽 전역을 순회하는 현역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반면 브람스는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젊은 작곡가였습니다. 스승의 아내와 결혼한다는 것은 당시 사회적 시선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두 사람 모두 그 무게를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브람스는 1858년, 클라라에게 뜨거운 편지를 보낸 지 불과 2년 만에 다른 여성 아가테 폰 지볼트와 약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약혼도 끝내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파혼으로 끝났습니다. 브람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클라라를 향한 마음이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다른 관계를 맺는 데도 계속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40년 가까이 이어진, 결혼이 아닌 다른 형태의 관계
결국 두 사람이 택한 건 결혼이 아니라, 아주 오래 지속되는 다른 형태의 관계였습니다. 브람스는 클라라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녀를 지탱해주는 존재로 남았습니다. 클라라 역시 브람스의 음악을 가장 먼저 듣고 평가해주는 사람이었고, 브람스의 여러 작품을 무대에 올려 세상에 알린 연주자이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수백 통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며, 그 관계는 40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이는 클라라와 슈만이 함께한 16년의 결혼 생활보다 훨씬 긴 시간입니다. 열정으로 시작된 감정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신뢰와 존중의 형태로 이어졌다는 게, 단순한 로맨스로만 설명하기엔 훨씬 깊은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클라라는 1896년에 세상을 떠났고, 브람스는 그로부터 1년 뒤인 1897년에 뒤를 따르듯 생을 마감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후대에는 다양한 해석이 붙었습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 보는 시각도 있고, 사랑을 넘어선 동반자적 신뢰 관계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두 사람 모두 이 관계를 결혼이라는 형태로 만들려 하지 않았고, 대신 서로의 음악과 삶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쪽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열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만들어낸, 결혼과는 또 다른 형태의 깊은 관계였던 셈이지요.
출처: Interlude(interlude.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