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얘기 나오면 빠지지 않는 이름, 프란츠 리스트. 그런데 이 사람 얘기를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늘 두 사람이 같이 따라 나옵니다. 그를 자극해서 피아니스트로 만든 니콜로 파가니니, 그리고 늘 비교당하는 프레데리크 쇼팽. 오늘은 이 셋 사이에 얽힌 이야기로 리스트가 실제로 얼마나 대단한 연주자였는지 한번 풀어보려고 합니다.

파가니니를 보고 인생이 바뀐 순간
리스트가 처음부터 초인적인 손가락을 갖고 태어난 건 아니었습니다. 1832년 파리에서 콜레라 희생자를 위한 자선 공연이 열렸는데, 이 무대의 주인공이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였습니다. 리스트는 이 공연을 객석에서 지켜봤고, 바이올린 하나로 만들어내는 소리에 완전히 압도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결심을 해버립니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의 거장이라면 나는 피아노의 거장이 되겠다고. 이후로 훈련 방식 자체를 갈아엎다시피 했고, 손가락 하나하나의 독립성부터 다시 다졌다고 전해집니다. 지금 보면 좀 낭만적인 구석도 있는데, 남의 연주 한 번 보고 인생 진로가 완전히 바뀐 셈이니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리스트는 파리 사교계에서 촉망받는 젊은 피아니스트 정도였는데, 이 하루의 충격 이후 연습량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렸다고 하니 그 파급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갑니다. 한동안 대중 앞에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하다시피 연습에만 매달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질 정도입니다.
이때부터 리스트는 곡 잘 치는 수준을 넘어서,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 소리를 흉내 내려는 시도까지 하게 됩니다. ‘피아노의 파가니니’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그래서인데,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으로 보여준 그 초절기교를 리스트는 건반 위로 옮겨온 셈이지요. 파가니니가 활 하나로 이뤄냈던 곡예에 가까운 기교를, 리스트는 열 손가락으로 재현해내려 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접점이 참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쇼팽과는 왜 자꾸 비교될까
리스트와 쇼팽, 같은 시대 같은 파리에서 활동했지만 스타일은 거의 정반대였습니다. 리스트는 대규모 청중 앞에서 화려하게 압도하는 쪽이었고, 쇼팽은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섬세하게 감정을 풀어내는 쪽을 좋아했습니다. 무대를 대하는 태도부터가 달랐던 거죠.
그래서인지 둘을 엮어서 하는 이야기가 지금도 종종 돌아다닙니다. 무대 체질이었던 리스트와, 청중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불편해했던 쇼팽. 성향이 이렇게 반대다 보니 쇼팽이 리스트의 인기를 은근히 의식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붙곤 합니다. 물론 이건 두 사람의 상반된 스타일에서 나온 후대의 해석에 가깝긴 한데, 그만큼 리스트의 존재감이 컸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서로 음악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으니, 라이벌이라기보다는 결이 다른 동료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리스트는 쇼팽의 곡을 무대에서 자주 연주하며 그의 이름을 유럽 전역에 알리는 데 한몫하기도 했습니다. 스타일은 정반대였지만 서로의 재능만큼은 곁에서 지켜보며 인정하는 사이였던 셈입니다.
리스트의 연주력, 진짜 뭐가 달랐나
단순히 손이 빨랐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리스트는 한 손으로 멜로디와 반주, 화성을 동시에 굴리는 방식을 개척했고, 피아노 한 대로 관현악단 같은 두께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가 쓴 초절기교 연습곡이나 파가니니 대연습곡을 들어보면, 지금도 웬만한 피아니스트들에게 최고 난이도로 꼽힙니다.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이 곡들이 여전히 도전 곡으로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당시 리스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당대 청중들이 그의 연주를 보고 실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리스트의 무대는 단순한 연주회를 넘어선 하나의 사건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파가니니라는 자극이 리스트를 극한까지 밀어붙였고, 그 결과가 쇼팽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화려함으로 완성된 셈입니다. 한 사람의 자극이 또 다른 거장을 만들고, 서로 다른 개성이 부딪히며 낭만주의 음악을 더 풍성하게 만든 거죠. 이 셋의 인연, 알고 보면 클래식 역사에서 꽤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라이벌 의식과 존경, 자극과 영감이 뒤섞인 관계였기에 지금까지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 Interlude, Six of the hardest piano etudes ever written(interlude.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