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라 불리는 드뷔시.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그의 음악만 알고 있다면, 정작 그의 사생활이 한때 파리 전체를 뒤흔든 스캔들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은 의외로 놀라울 거예요. 한 여인이 콩코르드 광장에서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던 사건, 그 중심에 드뷔시가 있었어요.
우아한 은행가의 아내를 만나다
1903년 10월, 드뷔시는 파리의 한 은행가의 아내였던 엠마 바르다크를 만나요. 그녀는 교양 있고 재치가 넘쳤고, 노래 실력까지 뛰어난 여성이었어요. 반면 드뷔시의 첫 아내였던 릴리 테시에는 헌신적이긴 했지만 지적인 면에서는 엠마만큼 드뷔시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해요. 두 사람의 관계는 1904년 초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드뷔시는 엠마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열정적인 편지를 계속 보냈어요.
아내를 기차에 태워 보내고
1904년 7월, 드뷔시는 몰래 엠마와 함께 저지섬으로 휴가를 떠나요. 그러면서 정작 아내 릴리는 친정으로 향하는 기차에 태워 보냈어요. 나중에 드뷔시가 릴리에게 이제 떠나겠다고 통보하자, 릴리는 여러 차례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정말로 끔찍한 일이 벌어져요. 결혼 5주년을 앞둔 날 밤, 릴리는 콩코르드 광장으로 나가 스스로 총을 쏘아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 총알은 평생 그녀의 척추에 박힌 채로 남았다고 해요. 그런데도 드뷔시는 병원에 있는 그녀를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고, 치료비조차 내주지 않았어요.
파리를 뒤흔든 스캔들
이 사건은 곧바로 파리 전역에 대서특필됐고, 상류 사교계는 이 소식으로 발칵 뒤집혔어요. 드뷔시의 오랜 친구들도 하나둘 그에게서 등을 돌렸어요. 특히 평소 가까웠던 작곡가 포레는 이 일 이후로 드뷔시와 아예 말을 섞지 않았다고 해요. 이 사건은 당시 파리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화제였던지, 나체의 여인이라는 제목의 연극으로까지 각색돼 무대에 오를 정도였어요.
새로운 시작, 그러나 다시 찾아온 균열
드뷔시는 1905년 8월 릴리와 정식으로 이혼하고, 곧바로 엠마와 함께 영국으로 떠나요. 그해 10월에는 두 사람 사이에서 딸 클로드 엠마가 태어났어요. 애칭으로 슈슈라고 불렸던 이 딸은 훗날 드뷔시가 무척 아꼈던 존재가 돼요. 1908년 1월, 드뷔시는 엠마와 정식으로 결혼해요.
그런데 이 두 번째 결혼도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엠마는 훗날 드뷔시를 두고 도덕적으로 비겁하고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고 해요. 예나 지금이나 조강지처를 버리면 벌을 받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남의 눈에서 눈물을 빼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는 옛말도 있고요. 드뷔시의 이야기를 보면 이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첫 결혼을 파국으로 몰아넣으면서까지 선택한 사랑이었지만, 정작 그 관계 역시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음악과 삶은 다른 이야기
저는 드뷔시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사람과 그 사람의 실제 삶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껴요. 그의 곡들은 지금 들어도 물결치듯 부드럽고 몽환적인데, 정작 그 곡을 쓴 사람의 삶은 총성과 배신, 그리고 오랜 친구들의 외면으로 얼룩져 있었으니까요. 예술과 인간은 별개의 영역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참고: 인터루드(interlude.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