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반대하는 길을 자식이 몰래 걸어가서, 결국 아버지보다 더 큰 이름을 남기게 됐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왈츠의 왕이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이야기가 바로 그래요. 아버지는 이미 빈에서 유명한 음악가였는데, 정작 아들에게는 음악가의 길을 강하게 반대했어요. 그런데 그 반대를 뚫고 나온 아들이 결국 아버지의 자리를 넘어서는 역사를 만들었어요.
음악가 아버지가 아들에게는 음악을 반대하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당시 빈에서 이미 확고한 명성을 가진 작곡가였어요.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왈츠 음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죠. 그런데 정작 자기 아들만큼은 음악가로 키우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아들이 은행원이나 사업가가 되기를 바랐고, 음악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고 해요. 본인이 음악가로 살아보니 그 길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몰래 배운 바이올린
하지만 어린 요한은 음악을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어요. 아버지 몰래 아버지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반대하는 길이었으니 대놓고 배울 수는 없었을 거예요. 아버지가 이끄는 악단의 연주자들이 아들에게 몰래 연주법을 가르쳐줬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버지의 사람들이 그 아들을 도와준 셈이니까요.
열일곱, 아버지에게 도전장을 내밀다
이렇게 숨어서 실력을 쌓던 요한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인 1844년,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케스트라를 결성해요. 그것도 다름 아닌 아버지의 악단과 정면으로 경쟁하는 자리였어요. 아버지 몰래 배운 실력으로,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아버지에게 도전장을 내민 거예요. 빈의 음악계는 이 소식에 술렁였어요. 과연 아들이 아버지만큼 해낼 수 있을지 다들 궁금해했죠. 처음에는 평가가 엇갈렸지만, 요한의 새롭고 신선한 곡들은 서서히 빈의 상류층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어요.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하나가 된 악단
그러다 1849년,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세상을 떠나요. 이 일을 계기로 아들 요한은 아버지의 악단과 자신의 악단을 하나로 합치면서 명실상부 빈을 대표하는 무도 음악 작곡가로 자리를 굳혀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두 악단이 하나가 됐다는 사실이 어쩐지 씁쓸하면서도 상징적으로 느껴져요.
푸른 도나우강, 그리고 아버지를 넘어선 이름
이후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왕성하게 곡을 쓰기 시작해요. 그중에서도 1867년에 발표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왈츠 곡 중 하나가 됐어요. 평생 그가 남긴 곡은 500곡이 넘는다고 해요. 그렇게 그는 빈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했고, 결과적으로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큰 명성을 얻게 됐어요.
반대 속에서도 지켜낸 마음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다고 생각하는 선택이 자식에게는 오히려 넘어서고 싶은 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는 분명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음악을 반대했을 거예요. 하지만 요한은 그 반대 속에서도 자기 마음을 꺾지 않았고, 결국 그 고집이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왈츠 음악을 탄생시켰어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들을 때면, 그 경쾌한 선율 뒤에 아버지 몰래 바이올린을 배우던 소년의 간절함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더 특별하게 들리는 것 같아요.
참고: 인터루드(interlude.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