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 치고 싶다는 아이, 클래식 교재와 같이 가도 될까

피아노를 배우는 이유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한때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예중이나 예고, 음대 입시까지 염두에 두고 체르니와 소나타 진도를 차근차근 밟아 갔어요. 요즘은 그런 아이가 오히려 드물어요. 대부분은 전공보다 즐거움을 찾는 취미로 피아노를 배워요. 어머님들도 아이가 피아노를 평생 즐길 수 있는 악기로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보내시는 경우가 많고요.

그러다 보니 레슨 중에 이런 말을 정말 자주 들어요. 선생님, 이 노래 치고 싶어요.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일 때도 있고,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의 OST일 때도 있어요. 휴대폰을 꺼내 들고 이 부분이요, 하면서 노래를 틀어 보여 주는 아이도 있어요.

취미라면 유행가도 당연히

저는 이런 요청을 받으면 그냥 레슨해 줘요. 어차피 취미로 배우는 거라면, 아이가 치고 싶은 곡을 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피아노를 배우는 목적이 즐거움인데, 정작 치고 싶은 곡은 못 치고 교재만 넘겨야 한다면 그건 순서가 뒤바뀐 거죠.

다행히 요즘은 이게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졌어요. 같은 유행가라도 수준에 맞춰 쉬운 버전부터 어려운 버전까지 다양하게 편곡된 악보가 나와 있거든요. 바이엘 단계 아이에게는 오른손 멜로디에 왼손은 한두 음만 받쳐 주는 쉬운 악보를 주고, 체르니 30번 정도 치는 아이에게는 원곡 느낌이 꽤 살아 있는 화려한 편곡을 줘요. 예전처럼 선생님이 일일이 아이 수준에 맞게 손으로 편곡해 줘야 하는 일이 많이 줄었어요. 아이 실력에 딱 맞는 악보를 고르는 것만 신경 쓰면 돼요.

다만 악보를 고를 때 하나는 꼭 확인해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악보 중에는 음이나 박자가 틀린 채로 올라와 있는 것도 꽤 많거든요. 아이가 틀린 악보로 열심히 연습해 오면, 원곡과 다르게 들리는 걸 본인도 이상하게 느끼면서도 어디가 틀렸는지는 몰라서 답답해해요. 그래서 레슨에 쓰는 악보는 제가 먼저 원곡과 맞춰 보고 주거나, 믿을 만한 곳에서 나온 악보를 쓰려고 해요.

유행가도 배울 게 많아요

어떤 어머님들은 유행가를 치면 클래식 진도가 늦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세요. 그런데 제가 가르쳐 보니 유행가에도 배울 게 꽤 많아요.

우선 리듬이요. 요즘 노래는 박자의 앞이 아니라 뒤에서 들어가는 엇박자가 정말 많아요. 클래식 교재에서는 잘 안 나오는 리듬이라 처음엔 아이들이 많이 헤매는데, 귀에 익은 노래라서 그런지 몇 번 들려주면 금방 몸으로 따라와요. 교재에서 같은 리듬을 만났다면 한참 걸렸을 걸, 좋아하는 노래 덕분에 쉽게 익히는 거죠.

화음도 자연스럽게 익혀요. 유행가 반주는 대부분 몇 개의 코드가 반복되는 구조라서, 왼손으로 그 코드를 짚다 보면 도미솔, 라도미 같은 화음이 손에 붙어요. 조금 익숙해진 아이에게는 악보의 왼손을 그대로 치는 대신 코드 이름만 보고 반주를 만들어 보게 하기도 해요. 이게 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다른 노래도 혼자 쳐 보려고 해요. 그 모습을 보면 피아노가 정말 아이 것이 되어 가고 있구나 싶어요.

무엇보다 연습량이 달라져요. 교재 곡은 하루 한두 번 겨우 치던 아이도, 좋아하는 노래는 시키지 않아도 몇 번씩 쳐요. 집에서 그 노래를 치는 소리가 들리면 가족들이 알아듣고 따라 부르기도 하니까 아이도 신이 나고요. 이렇게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이 늘어나면 손가락도, 악보 읽는 눈도 같이 좋아져요.

교재와 유행가를 같이 가는 법

그렇다고 유행가만 치게 하지는 않아요. 레슨 시간을 나눠서 앞부분은 교재로 기본기를 다지고, 뒷부분은 아이가 고른 노래를 쳐요. 교재 곡을 잘 마무리하면 노래 시간을 조금 더 늘려 주기도 하고요. 아이들은 뒤에 좋아하는 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니까 교재 시간도 덜 지루해해요.

곡을 고를 때는 아이가 원하는 노래 중에서 지금 배우고 있는 것과 연결되는 걸 고르면 더 좋아요. 왼손 화음을 배우는 중이라면 반주가 단순하고 코드가 분명한 노래를, 리듬을 익히는 중이라면 엇박자가 살아 있는 노래를 고르는 식이에요. 아이는 좋아하는 노래를 치는 거고, 저는 그 안에서 가르치고 싶은 걸 슬쩍 넣는 거죠.

요즘 아이들 피아노 가방을 열어 보면, 교재 사이사이에 프린트한 노래 악보가 한두 장씩 꼭 끼워져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