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피아노 그만할래요.” 레슨을 오래 하다 보면 이 말을 수없이 듣게 돼요. 어떤 아이는 연습곡이 어려워질 때, 어떤 아이는 친구들이 학원을 옮길 때, 또 어떤 아이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하기 싫다고 말해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제가 뭘 잘못 가르쳤나 싶어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말은 대부분 피아노가 싫어서라기보다 지금 넘어야 할 고비 앞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피아노를 배우는 원래 목적을 떠올려 보면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이유를 여쭤보면 대부분 비슷해요. 전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커서 자기가 좋아하는 곡 정도는 편하게 칠 수 있는 취미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저도 그 마음에 깊이 공감해요. 힘들 때 피아노 앞에 앉아 좋아하는 곡 한 곡을 칠 수 있다는 건 평생 가는 선물이니까요.
그런데 그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피아노도 결국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에요. 손가락이 생각대로 움직이고, 악보를 보면 바로 소리가 떠오르고, 새로운 곡을 혼자 익힐 수 있을 정도가 되기까지는 반복과 연습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피아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만 배울 수는 없어요. 어느 정도는 강제성이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곡을 함께 가르치고 하농 같은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결국 이 고비를 조금 덜 힘들게 넘기게 하려는 방법이에요. 다만 그렇게 해도 고비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아요. 체르니 30번처럼 속도를 내야 하는 시기, 급수를 준비하며 한 곡을 몇 주씩 붙잡아야 하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아이들이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때도 대부분 바로 이 시기와 겹쳐요.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가 하는 일
먼저 어머님께 말씀드려요. 아이가 요즘 이런 말을 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이 실력이 한 단계 올라가기 전 가장 힘든 구간이라는 것을요. 아이가 집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선생님과 부모님이 같은 방향으로 이야기해 주는 게 정말 중요해요. 한쪽에서는 조금만 더 해보자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고 하면 아이가 더 흔들리거든요.
그다음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요. 이때 제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아이 눈높이에 맞춰 말하는 거예요. 어른들끼리 하는 말처럼 끈기나 인내를 강조하면 아이에게는 잔소리로만 들리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말해줘요. “뭐든지 잘하려면 꼭 힘든 고비가 한 번씩 와. 그런데 그 고비를 넘기는 사람만 자기가 원하는 걸 얻게 되는 거야.”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빗대어 설명하면 훨씬 잘 알아들어요.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어려운 판을 깨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해주고,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처음엔 힘들었던 줄넘기나 수영이 어느 순간 쉬워졌던 경험을 떠올려 보게 해요. 자기가 이미 한 번 고비를 넘겨본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하면, 피아노의 고비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거든요.
고비를 넘긴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 바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아요. 여전히 연습하기 싫은 날도 있고, 한숨 쉬며 레슨에 들어오는 날도 있죠. 그래도 목표를 조금 작게 잡아주면 아이가 버티는 힘이 생겨요. 이번 곡 하나만 끝까지 완성해 보자, 이번 급수까지만 해보자 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작은 고비를 하나씩 넘길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아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구간을 지나고 나면 아이들 표정이 달라져요. 예전에는 몇 주씩 걸리던 곡을 훨씬 빨리 익히고, 스스로 치고 싶은 곡을 찾아오기도 해요. 그만두겠다고 하던 아이가 몇 달 뒤에 “선생님, 다음엔 이 곡 쳐봐도 돼요?” 하고 물어올 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을 맞이해요.
물론 모든 아이가 피아노를 계속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오랜 시간 충분히 해봤는데도 정말 맞지 않는 아이도 있고, 다른 분야에서 더 빛나는 아이도 있으니까요. 다만 힘든 순간에 바로 그만두는 경험보다, 한 번쯤 고비를 넘겨본 경험이 아이에게 훨씬 오래 남는다고 믿어요. 피아노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무언가를 잘하고 싶을 때 그 기억이 분명 힘이 되어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