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제를 위하여를 처음 배우는 날이면 아이들 표정이 묘하게 들떠 있어요. 악보를 펴기도 전에 “선생님, 이 곡 무서운 곡이죠?” 하고 먼저 물어보는 친구들이 꼭 있거든요. 한때 이 곡을 두고 아이들 사이에 귀신 이야기 같은 소문이 돌았어요. 밤마다 음악실 피아노에서 이 곡이 혼자 흘러나온다든가, 끝까지 치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든가 하는 식이었죠. 듣는 아이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은 늘 같았어요. 이 곡은 뭔가 으스스하다는 거예요.
아이들 괴담 속 엘리제, 실제 사연은 전혀 달라요
솔직히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좀 상했어요. 제가 아끼는 곡이 공포 이야기 소재로만 기억되는 게 아쉬웠거든요. 가라앉은 가단조 선율이 어린 귀에는 쓸쓸하고 서늘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이 곡에 담긴 진짜 사연을 알면 무섭다는 생각은 금방 사라질 텐데 하는 마음이 더 컸어요.
이 곡은 베토벤이 1810년 4월 27일에 쓴 작은 피아노 소품이에요. 정식 이름은 바가텔 가단조이고, 작품번호가 없는 곡이라는 뜻의 WoO 59라는 번호가 붙어 있어요. 재미있는 건 베토벤이 살아 있을 때는 한 번도 출판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가 세상을 떠나고 40년이 지난 1867년, 음악학자 루트비히 놀이 자필 악보를 발견해 책에 실으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어요. 그 원본 악보는 지금 사라지고 없고요.
그럼 엘리제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이 대목에서 아이들 눈이 제일 반짝여요. 요즘 아이들은 영상으로 먼저 접해서인지 테레제라는 이름을 벌써 알고 오는 경우가 꽤 많더라고요. “선생님, 원래는 엘리제가 아니라 테레제래요” 하고 오히려 저에게 설명해 주는 친구도 있어요. 저는 그 순간이 참 반가워요. 괴담 대신 진짜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테레제 말파티와 알아보기 힘든 베토벤의 글씨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의 주인공은 테레제 말파티예요. 베토벤의 제자이자 가까운 친구였고, 바로 이 곡을 쓴 1810년에 베토벤이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상대로 알려져 있어요. 악보를 가지고 있던 사람도 그녀였고요. 베토벤은 악필로 유명했기 때문에, 악보에 적힌 테레제라는 이름을 놀이 엘리제로 잘못 옮겨 적었을 거라는 추측이 여기서 나왔어요. 물론 원본이 없으니 확정할 수는 없어요.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에 출연했던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뢰켈이나, 엘리제 바렌스펠트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보는 연구자들도 있거든요.
저는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 정답을 정해주지 않아요. 대신 이렇게 물어봐요. “청혼을 거절당한 해에 쓴 곡이래. 그럼 어떤 마음으로 치면 좋을까?”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이들 소리가 달라져요. 무서운 곡이 아니라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곡으로 들리기 시작하는 거죠. 괴담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이 이럴 때 조금씩 풀려요.
레슨에서 아이들이 자주 막히는 부분
이제 실제로 칠 때 이야기를 해볼게요. 첫머리의 미 레샵 미 레샵은 누구나 아는 부분이라 오히려 방심하기 쉬워요. 이 반복을 급하게 몰아치면 곡 전체가 쫓기듯 들려요. 손목에 힘을 빼고 두 음을 가볍게 흔들듯이 치되, 박자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게 지키는 게 첫 번째 과제예요.
두 번째는 왼손이에요. 라 미 라로 올라가는 분산화음을 치고 오른손에게 선율을 넘겨주는 흐름이 매끄럽지 않으면 음악이 뚝뚝 끊겨요. 왼손 마지막 음과 오른손 첫 음이 마치 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처럼 이어지도록, 그 연결 부분만 따로 떼어 천천히 연습해 보세요. 생각보다 금방 좋아져요.
세 번째는 쉼표예요. 아이들은 쉼표를 그냥 비워두는 자리로 여기는데, 이 곡에서 쉼표는 숨을 고르는 순간이에요. 쉼표를 제대로 쉬어줘야 다음 선율이 살아나요.
마지막으로, 많은 아이들이 첫 페이지만 치고 이 곡을 다 배웠다고 생각해요. 사실 중간에는 분위기가 밝아지는 부분도 있고, 왼손이 낮은 음을 계속 두드리며 긴장을 쌓아가는 부분도 있어요. 끝까지 쳐봐야 이 곡이 단순히 쓸쓸하기만 한 곡이 아니라, 감정이 오르내리는 작은 이야기라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첫 페이지가 익숙해졌다면 꼭 뒷부분까지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혹시 집에서 아이가 이 곡을 연습하다가 무서운 곡이라는 이야기를 꺼낸다면, 테레제 이야기를 한번 들려주세요. 괴담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될 거예요.
참고: FM(classicfm.com) 기사를 참고해 정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