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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읽기가 느린 아이 계이름을 하나씩 세는 건 괜찮을까 피아노 선생님의 생각

레슨을 하다 보면 악보를 앞에 두고 손가락으로 줄을 하나씩 짚어가며 “도, 레, 미, 파…” 하고 세는 아이를 자주 만나요. 한 음 한 음 세다 보니 두 마디를 치는 데도 한참이 걸리죠. 옆에서 지켜보시는 부모님은 속이 타실 수 있어요. 우리 아이만 이렇게 느린 건 아닌지, 이렇게 세면서 치는 게 나쁜 습관은 아닌지 걱정이 되시니까요.

그런데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계이름을 하나씩 세는 것 자체는 전혀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악보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는 오히려 당연한 과정이에요. 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가 한 글자씩 소리 내어 읽다가 어느 순간 단어를 통째로 읽게 되는 것처럼, 악보도 처음에는 하나씩 세는 단계를 거쳐야 나중에 한눈에 읽을 수 있게 되거든요.

많이 느린 친구에게는 미리 읽어오기

그래도 유독 악보 읽기가 느린 친구들이 있어요. 이런 아이들은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 악보 읽기와 손가락 번호, 박자까지 한꺼번에 신경 써야 하니 금방 지쳐버려요. 그래서 저는 많이 느린 친구에게 조금 다른 방법을 써요. 피아노 앞에 앉기 전에 오른손 악보의 계이름을 먼저 읽어보고 오게 하는 거예요.

레슨 전에 미리 음표 아래에 계이름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막상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는 읽는 부담이 줄어들어서 손가락과 박자에 더 집중할 수 있어요. 한 번에 모든 걸 하려고 하면 버거운 아이도, 이렇게 일을 나눠주면 훨씬 수월하게 따라와요. 처음에는 오른손만 하다가, 익숙해지면 왼손 낮은음자리표도 같은 방법으로 읽어오게 하고요.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초를 배우는 친구들을 위한 방법이에요. 계속 계이름을 적어주거나 미리 읽어오는 데만 의지하면 악보를 직접 보고 바로 치는 힘이 자라지 않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조금씩 도움을 줄여가요.

손가락에도 기억이 있어요

악보 읽기가 느린 아이를 둔 부모님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손가락에도 기억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 곡의 악보를 꾸준히 배우다 보면, 자주 나오는 음의 자리와 모양이 머리보다 손이 먼저 기억하게 돼요. 오선 위 이 자리에 있는 음표는 이 건반이라는 게 생각하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연결되는 거죠.

여기에 작은 요령을 하나 더해 주기도 해요. 음표를 하나하나 이름으로 읽는 대신, 앞 음에서 한 칸 올라갔는지 두 칸 내려갔는지 간격을 보게 하는 거예요. 첫 음만 정확히 찾으면 나머지는 모양을 따라가면 되니까, 계이름을 전부 세지 않아도 훨씬 빨리 칠 수 있어요.

그래서 악보 읽기는 따로 떼어서 억지로 훈련하기보다, 여러 악보를 열심히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는 한 곡 읽는 데 일주일이 걸리던 아이가 몇 달 뒤에는 새 악보를 받아도 금세 첫 줄을 쳐내는 걸 보면, 그동안 쌓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껴요. 그 순간을 볼 때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도 참 기쁘고요.

유난히 느린 아이에게는 시간을 더 주는 수밖에

그럼에도 유난히 느린 친구들이 있어요. 같은 시간을 들이고 같은 방법으로 연습하는데도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아이들이요. 솔직히 이 부분은 안타깝지만 방법이 많지 않아요. 피아노는 결국 예체능의 영역이라, 사람마다 익히는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아이에게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더 주는 수밖에 없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수영을 처음 배울 때 혼자서 레일 끝까지 가기까지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어요. 같이 시작한 사람들은 벌써 저만치 가 있는데 저만 제자리인 것 같아서 속상한 날도 많았죠.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다니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제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는 종목이 생기기도 했어요. 처음에 느렸다고 끝까지 느린 건 아니더라고요.

이 경험 덕분에 악보를 느리게 읽는 아이를 볼 때 조급해지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 느린 건 이 아이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 익숙해질 시간이 더 필요한 것뿐이니까요. 오히려 천천히 한 음 한 음 확인하며 배운 아이가 나중에 더 정확하게 악보를 읽는 경우도 많아요.

혹시 아이가 악보 읽기 때문에 속상해한다면 다른 친구와 비교하기보다 지난달과 비교해 주세요. 한 달 전에는 한 줄 읽는 데 오래 걸렸는데 지금은 조금 빨라졌다는 걸 아이 스스로 알게 되면, 그게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힘이 돼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꾸준히 가는 아이는 결국 도착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