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티네에 들어가면 저는 진도를 넘겨주는 기준을 바꿔요. 그전까지는 악보를 천천히라도 정확하게 읽어 내면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소나티네부터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아이도 어머님도 조금 당황하세요. 하지만 이 시기에 기준을 한 번 올려 두지 않으면, 아이가 곡을 치는 게 아니라 악보를 읽는 데서 멈춰 버리게 돼요.
설레는 첫 곡, 그리고 달라지는 기준
소나티네를 받는 날 아이들은 확실히 들떠 있어요. 연습곡만 치다가 이름 있는 곡을 처음 받았다는 뿌듯함도 있고, 이제 형이나 언니들처럼 급수를 나갈 수 있다는 기대도 있죠. 악보를 받아 들고 몇 장인지 넘겨 보며 신나 하는 모습은 매번 봐도 귀여워요.
그런데 제가 이때부터 조금 엄해져요. 바이엘이나 체르니 100번 때는 느리더라도 음을 틀리지 않고 끝까지 치면 넘겨줬던 친구들도, 소나티네에서는 그렇게 해 줄 수가 없어요. 소나티네는 곡의 빠르기를 어느 정도 따라가야 비로소 곡다운 곡이 되기 때문이에요.
같은 곡을 절반 속도로 치면 음은 다 맞아도 전혀 다른 음악이 돼요. 밝고 경쾌해야 할 부분이 느릿느릿 늘어지고, 선율이 흐르지 못하고 뚝뚝 끊어져요. 그래서 이 단계부터는 악보를 읽을 줄 아는 것과 곡을 칠 줄 아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아이들에게 분명히 알려 줘요. 정해진 빠르기에 가깝게 칠 수 있을 때까지는 같은 곡을 조금 더 붙잡고 있게 되고요.
어머님들께도 이 시기에는 미리 말씀을 드려요. 한 곡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도 아이가 게으르거나 못해서가 아니라,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요. 이 설명을 미리 들으신 어머님들은 진도가 잠깐 느려져도 조급해하지 않고 아이를 기다려 주세요.
급수 곡이라서 생기는 마음의 부담
소나티네는 급수 시험 곡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레슨실 이곳저곳에서 같은 곡이 하루 종일 흘러나오기도 해요. 여러 아이가 같은 곡을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니, 나중에는 아이들이 이 곡을 듣는 것조차 싫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악보를 받았을 때 그렇게 설레던 곡인데, 급수를 준비하는 사이 지겨운 곡이 되어 버리는 걸 보면서 속상했던 적이 있어요. 곡이 가진 예쁜 선율은 그대로인데, 시험을 위한 반복이 그 매력을 가려 버린 것 같아서요.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진도가 느린 친구들이에요. 옆에서 다른 아이가 같은 곡을 빠르고 매끄럽게 치는 걸 들으면, 느린 친구들은 괜히 주눅이 들어요. 자기도 급수에 나가고 싶은데 이렇게 느리게 치다가는 못 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게 표정에 다 보이거든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더 불안한 거라서, 그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주눅 든 아이에게 제가 해 주는 것
이럴 때 저는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말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그 아이의 지난주 연주와 이번 주 연주를 비교해 줘요. 지난주에는 이 마디에서 멈췄는데 이번 주에는 넘어갔다든가, 속도가 조금 올라왔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다른 사람보다 느려도 어제의 나보다는 나아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이 표정이 한결 편안해져요.
속도를 올리는 연습도 한꺼번에 하지 않아요. 곡 전체를 빠르게 치려고 하면 다시 틀리고 좌절하기 쉬우니까, 가장 막히는 두세 마디만 떼어 내서 조금씩 빠르기를 올려 봐요. 그 부분이 편해지면 앞뒤를 이어 붙이고요. 이렇게 작은 성공을 여러 번 쌓다 보면 어느새 곡 전체의 속도가 올라와 있어요.
그리고 급수는 한 번에 끝나는 경쟁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꼭 해 줘요. 이번에 조금 늦게 나가더라도 준비가 충분히 됐을 때 나가면 결과도 좋고,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자신감을 얻어요. 서둘러 나갔다가 무대에서 긴장해 제 실력을 못 보여 주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경험이에요.
소나티네는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음악을 음악답게 쳐 보는 곡이에요. 그 첫 경험이 비교와 부담으로만 기억되지 않도록, 집에서도 다른 아이보다 얼마나 빠른지가 아니라 지난번보다 얼마나 자연스러워졌는지를 함께 들어 주세요. 그 한마디가 느린 친구에게는 급수보다 더 큰 힘이 되기도 하거든요.
돌이켜 보면 급수를 조금 늦게 나갔던 아이들이 오히려 피아노를 더 오래 치는 경우도 많았어요. 남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자기 속도로 끝까지 가 보는 경험이, 아이에게는 훨씬 오래 남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