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피아노 사기 전에 해머 마모와 건반 88개 소리부터 확인하는 이유

뚜껑부터 열어 보세요, 해머가 얼마나 닳았는지

중고 피아노를 보러 가면 저는 건반보다 뚜껑을 먼저 열어 봐요. 업라이트 피아노는 윗뚜껑을 들고 앞판을 떼어 내면 안쪽에 줄을 때리는 해머가 일렬로 쭉 서 있는 게 보이는데, 제가 제일 오래 들여다보는 곳이 바로 여기예요. 겉이 아무리 반짝반짝해도 해머 상태가 나쁘면 그 피아노는 이미 소리를 많이 잃은 상태거든요.

해머는 나무 몸통에 두툼한 펠트를 감아 만든 부품이에요. 건반을 누를 때마다 이 펠트가 줄을 때리니까, 오래 많이 친 피아노일수록 펠트 끝이 납작해지고 줄 자국이 홈처럼 깊게 패여요. 새 해머는 끝이 동그스름하게 봉긋한데, 많이 닳은 해머는 끝이 평평하게 눌려 있고 줄이 닿는 자리마다 선이 그어져 있어요. 펠트 색이 누렇게 변해 있거나 일부만 유독 움푹 들어가 있는 것도 눈여겨봐요. 자주 치는 가운데 음역대 해머가 양 끝보다 훨씬 많이 닳아 있는 경우가 흔하거든요.

해머가 닳으면 소리가 딱딱하고 날카로워져요. 처음 몇 번 들을 때는 소리가 맑고 크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조금만 오래 치면 귀가 피곤해지는 쨍한 소리예요. 상태가 심하면 펠트를 다듬거나 아예 교체해야 하는데, 이건 조율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이라 비용도 꽤 들어요. 판매하는 분이 조율만 하면 괜찮다고 하셔도 해머가 많이 닳아 있다면 그 말만 믿고 사시면 안 돼요.

건반은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눌러 보기

두 번째로 꼭 하는 건 건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눌러 보는 거예요. 88개를 다 누르는 게 번거로워 보여도, 실제로 사기 전에 하나하나 소리를 확인하는 게 제일 확실해요. 저는 가장 낮은 음부터 한 음씩 올라가면서 누르고, 같은 건반을 세게 한 번, 여리게 한 번 쳐 봐요.

이때 보는 건 몇 가지예요. 눌렀는데 소리가 안 나는 건반이 있는지, 눌린 건반이 바로 올라오지 않고 느릿하게 올라오거나 아예 걸려 있는지, 손을 뗐는데도 소리가 계속 울리는지, 옆 음과 비교해 유독 작거나 탁하게 나는 음이 있는지요. 소리가 아예 안 나는 건반은 해머 몸통이 부러졌거나 액션 부품이 어긋난 경우가 많아요. 여리게 쳤을 때 소리가 끊기거나 고르게 안 나오는 피아노로는 아이가 셈여림 연습을 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솔직히 이 부분은 레슨하는 사람이라 더 예민하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건반 몇 개 상태가 나쁜 걸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쉬운데, 매일 그 피아노로 연습하는 아이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요. 어떤 음은 잘 나고 어떤 음은 안 나면, 아이는 그게 피아노 문제인지 자기 손 문제인지 구분을 못 해요. 그래서 중고 피아노를 고를 때만큼은 귀찮아도 끝까지 다 쳐 보는 쪽을 택해요.

잡음과 페달도 같이 들어 보세요

건반을 누르면서 같이 들어야 하는 게 잡음이에요. 지잉 하고 떨리는 소리나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섞이면 안쪽 부품이 헐거워졌거나 이물질이 들어가 있을 수 있어요. 오래 방치된 피아노 안에서 동전이나 머리핀, 장난감 조각이 나오는 일도 드물지 않아요.

페달도 하나씩 밟아 봐요. 오른쪽 페달을 밟고 건반을 치면 소리가 풍성하게 이어져야 하고, 발을 떼면 깔끔하게 멈춰야 해요. 밟을 때 삐걱 소리가 나거나 느낌이 너무 헐겁다면 조정이 필요한 상태예요. 해머나 건반에 비하면 비교적 손보기 쉬운 편이지만, 가격 이야기할 때 참고하면 좋아요.

사기 전에 같이 물어볼 것

마지막 조율이 언제였는지, 어디에 두고 썼는지도 물어보세요. 오래 조율하지 않은 피아노는 음정이 전체적으로 많이 내려가 있어서 한 번에 원래 음정으로 끌어올리기 어려울 수 있어요. 베란다나 창가처럼 습기와 햇빛을 많이 받는 자리에 있었다면 내부 상태도 한 번 더 의심해 봐야 하고요.

피아노 안쪽에 적힌 제조번호를 보면 대략 몇 년도에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 있어요. 연식만으로 좋고 나쁨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해머 마모 정도와 함께 보면 그 피아노가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 짐작하는 데 도움이 돼요.

해머 교체는 보통 88개를 한 세트로 바꾸는 작업이라, 중고 피아노 가격에 따라서는 수리비가 피아노값을 넘기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