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를 받고도 반신반의했던 순간
노르웨이의 대문호 헨리크 입센이 자신의 희곡 페르귄트에 곡을 붙여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리그는 선뜻 그러겠다고 답하지 못했어요.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 워낙 서정적이고 섬세한 쪽에 가까운데, 페르귄트라는 작품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기이한 이야기라서 이게 맞는 조합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던 거예요. 페르귄트는 원래 무대 상연을 염두에 두지 않고 쓴 희곡이었어요. 몽상과 방탕을 오가는 한 청년이 산속 마왕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문답을 나누고, 여러 나라를 떠돌다가 늙고 초라해진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오는, 상당히 난해하고 기괴한 서사였거든요. 입센은 이 작품을 실제 무대에 올리기로 하면서, 음악의 힘으로 극의 약점을 보완하고 싶어 했고, 그 상대로 그리그를 지목했어요.
내키지 않았던 시작
결국 그리그는 1874년부터 작곡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작업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극장 경영진이 공연 시간을 조절하겠다며 음악에 이런저런 제약을 걸었고, 그리그는 이런 간섭에 대해 불평을 남기기도 했어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마음껏 펼치기 어려운 환경이었던 거예요. 게다가 곡을 붙여야 할 장면 중에는 산왕의 궁전에서처럼 노르웨이 민속적이고 다소 거칠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요구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리그 스스로 이 곡을 두고 소똥 냄새가 나는 너무도 노르웨이적인 곡이라고 평했다고 전해져요. 자기 손으로 쓴 곡을 이렇게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이 작업이 그에게 얼마나 낯설고 부담스러웠는지를 짐작하게 해요.
초연 이후에 남은 씁쓸함
1876년 크리스티아니아, 지금의 오슬로에서 페르귄트가 초연됐을 때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긴 했어요. 하지만 뒤따른 평가가 그리 곱지만은 않았어요. 노르웨이인의 안 좋은 점만 가득 모아놓았다는 혹평도 있었고, 음악이 너무 서정적이라 극의 거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어요. 처음부터 자신 없어 했던 그리그 입장에서는 이런 반응이 마음에 걸렸을 거예요. 애초에 이 조합이 자기 스타일과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우려가 어느 정도 현실이 된 셈이니까요.
10년 만에 다시 꺼내 든 이유
흥미로운 건 그리그가 이 작업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원곡을 작곡한 지 10년 넘게 흐른 뒤, 그리그는 극음악 속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 부분들만 추려서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다시 만들었어요. 오제의 죽음, 솔베이그의 노래, 산왕의 궁전에서, 아침의 기분 같은 곡들이 바로 이 모음곡에 담겨 있어요. 극 전체의 서사나 무대 제약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음악만으로 다시 다듬은 거예요. 결과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듣는 페르귄트는 원래의 극음악이 아니라, 그리그가 후회와 아쉬움 속에서 골라내 다시 빚어낸 이 모음곡 쪽이에요.
후회에서 나온 명곡
돌이켜보면 그리그가 페르귄트 작업 자체에 확신이 없었고, 완성 후에도 만족스럽지 않아 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흥미로워요. 만약 그가 처음부터 자신만만하게 이 곡을 세상에 내놓았다면, 10년 뒤에 다시 손을 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라요. 오히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들여다봤고, 그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아는 아름다운 모음곡이 탄생한 거예요. 솔베이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 선율 뒤에 이런 망설임과 재작업의 과정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곡이 다르게 들려요.
참고: 의사신문 클래식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