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 반주자에서 시작된 이야기
19세기 말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갓 떠오르기 시작한 신흥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있었어요.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로 꼽히던 오스트리아 빈의 영광이 서서히 저물면서, 파리가 새로운 예술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시기였어요. 젊은 화가와 음악가, 문인들이 이 언덕으로 몰려들었고, 그 속에 에릭 사티도 있었어요. 그는 군 복무 중 기관지염과 정서 불안을 이유로 조기 제대했는데, 사실 세상 자체에 딱히 적응하지 못하던 내향적인 청년이었다고 전해져요. 별다른 갈 곳이 없던 그가 흘러들어간 곳이 바로 이 언덕이었고, 카바레 검은 고양이에서 처음 일자리를 얻게 돼요.
그가 맡은 역할은 화려한 독주 무대가 아니라 그림자 연극에 맞춰 반주하는 피아니스트 자리였어요.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극 뒤에서, 정해진 각본도 없이 분위기에 맞춰 즉흥적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일이었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가 아니라 조용히 뒤를 받쳐주는 자리, 어쩌면 이때의 경험이 훗날 그의 음악 인생 전체를 미리 암시하는 출발점이었는지도 몰라요. 이후 그는 못의 주막이라는 또 다른 카바레로 자리를 옮기면서 몽마르트르 예술가들 사이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덜어내는 쪽을 택하다
당시 유럽 음악계는 바그너식의 웅장함과 후기 낭만주의의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했어요. 오케스트라 편성은 갈수록 커졌고, 화성은 점점 복잡해졌고, 감정 표현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티는 이 흐름과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그가 관심을 둔 건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하나의 선율만 흐르는 단선율 양식, 고대 그리스의 소박한 양식, 신비로운 중세적 분위기였어요. 화려하게 쌓아 올리기보다 계속 덜어내는 쪽. 남들이 하나를 더 얹을 때 그는 오히려 하나를 걷어내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성향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함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그의 기질과도 맞닿아 있었다고 해요.
스파르타의 축제에서 가구 음악까지
짐노페디라는 제목은 고대 스파르타의 축제 의식에서 따온 말이에요. 아폴론 신을 찬미하며 알몸의 청년들이 며칠씩 춤추고 노래하고 시를 낭송하던 행사였다고 해요. 사티는 이 축제를 묘사한 시를 읽고 곡을 썼는데, 정작 곡에서는 그 역동적인 춤사위 대신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흐르는 명상적인 순간만 남겨뒀어요. 축제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흐르는 정지된 공기를 붙잡아낸 셈이에요. 느린 왈츠 리듬 위에 얹힌 선율은 화려한 축제라기보다 오히려 쓸쓸하고 고요한 여운에 가까워요.
이런 성향은 훗날 그가 남긴 유명한 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요. 음악은 가구처럼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는 말이었어요. 집중해서 감상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기처럼, 벽지처럼 배경에 스며드는 음악이라는 발상이었어요. 짐노페디의 반복적이고 단순한 선율은 바로 이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이에요. 카페나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을 당연하게 여기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100년도 더 전에 이런 개념을 먼저 던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새삼 놀라워요. 지금 우리가 아는 앰비언트 음악이나 카페 BGM의 원형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이 지점에 닿는다고 볼 수 있어요.
드뷔시가 알아본 곡, 그리고 남은 삶
당대 사티는 아마추어 취급을 받으며 별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화려한 기교도 없고 음악원 정규 교육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그를 진지한 작곡가로 봐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드뷔시가 이 곡을 무척 좋아해서 직접 관현악으로 편곡했고, 지금 우리가 자주 듣는 관현악 버전 두 곡이 바로 그 결과물이에요. 피아노 독주곡으로만 남았다면 지금만큼 알려지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동료의 안목 하나가 한 곡의 운명을 이렇게 바꿔놓기도 하네요.
사티는 평생 가난했고, 사랑했던 여인과 헤어진 뒤로는 27년간 파리 교외의 낡은 방에서 혼자 지냈어요. 그 방에는 그가 죽기 전까지 누구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고 해요. 세상을 떠난 뒤 그 방을 정리하던 사람들은 고장 난 피아노 밑에서 잡동사니만 잔뜩 발견했다고 전해져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음악에서 추구한 단순함만큼은 끝까지 놓지 않았어요. 짐노페디의 그 정지된 듯한 고요함이, 어쩌면 그가 살아낸 삶의 온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참고: 예스24 채널예스 클래식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