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줏간집 아들이 뉴욕으로 간 이유
안톤 드보르작은 보헤미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푸줏간 겸 여관을 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당연히 가업을 물려받길 원했지만, 어린 드보르작은 여관에 묵는 방랑 음악가들의 연주를 들으며 음악에 대한 동경을 키웠고, 결국 16세에 집을 나와 프라하로 향했어요.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 브람스의 눈에 들면서 슬라브 무곡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그는, 1892년 가을 뉴욕 내셔널 음악원의 원장으로 초빙받아 대서양을 건너게 돼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봉을 제안받은 스카우트였고, 유럽에서 이미 거장 반열에 오른 그가 새로운 대륙에서 다시 한번 도전을 시작한 셈이었어요.
낯선 땅에서 만난 새로운 소리
뉴욕에 도착한 첫해, 드보르작은 바쁜 일정 때문에 정작 작곡에는 손을 대지 못했어요. 하지만 환경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그의 창작력은 오히려 절정으로 치달았어요. 그를 사로잡은 건 아메리카 원주민의 음악과 흑인 영가였어요. 유럽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리듬과 음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애환이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는 이 낯선 소리들을 자신의 음악 언어로 흡수하기 시작했어요. 1893년 초, 새로운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을 마친 그는 아홉 번째 교향곡을 스케치하기 시작했고, 그해 5월 말경 전 4악장의 초안을 마무리했어요.
스필빌이라는 작은 위안
교향곡을 완성해가던 그해 여름, 드보르작은 뉴욕에서 2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아이오와주의 스필빌이라는 작은 마을로 휴가를 떠났어요. 이곳은 보헤미아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는데, 향수병에 시달리던 드보르작에게는 고향과 다름없는 편안함을 주는 곳이었어요. 낯선 대륙 한복판에서 우연히 만난 고향의 말과 풍습이 그의 마음을 크게 달래줬고, 그는 이 휴가 기간 동안 교향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한 뒤 신세계로부터라는 부제를 붙였어요. 뉴욕에서 받은 환대와 호의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붙인 부제였다고 전해져요.
2악장에 숨겨둔 그리움
이 교향곡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부분은 2악장 라르고예요. 잉글리시호른이 나지막하게 연주하는 아련한 선율은 드보르작 자신이 고향 보헤미아를 그리워하며 써넣은 주제라고 알려져 있어요. 훗날 그의 미국인 제자였던 피셔가 이 선율에 가사를 붙여 꿈속의 고향이라는 노래로 만들었고, 이 곡은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에 저마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으로 자리 잡았어요. 흥미로운 건 이 선율이 순수하게 보헤미아 민요만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아메리카 원주민 음악과 흑인 영가에서 받은 인상이 슬라브적 색채와 자연스럽게 뒤섞이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독특한 그리움의 정서가 만들어졌어요.
기차를 사랑한 작곡가의 흔적
드보르작은 알아주는 철도 애호가였어요. 미국에서 강의하던 시절, 수업 도중에 기차를 보러 간다며 휴강을 선언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애정이 보통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인지 4악장 도입부에서 점점 빨라지고 높아지는 강렬한 서주부는 증기 기관차가 서서히 출발하는 소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이 도입부는 훗날 미국의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에게도 영감을 줬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부분이에요.
전 세계가 공감하는 향수
드보르작이 이 곡에 담아낸 그리움은 단순히 자기 고향에만 머무는 좁은 감정이 아니었어요. 낯선 대륙에서 마주한 새로운 소리들과 자신이 떠나온 고향의 정서를 함께 녹여냈기 때문에, 국적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이 곡에서 저마다의 그리움을 느낄 수 있게 된 거예요. 신대륙에서 완성됐지만 구대륙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는 곡, 그게 바로 신세계로부터라는 부제가 그저 지리적인 의미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지점인 것 같아요.
참고: 컬처램프 클래식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