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이라는 이름은 베토벤이 붙인 게 아니었다
흔히 ‘월광 소나타’로 불리는 이 곡의 원래 제목은 사실 “환상곡풍 소나타”예요. 베토벤 본인은 달빛이나 낭만적인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이 곡을 쓴 게 아니었다는 거죠. ‘월광’이라는 별명이 붙은 건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 지난 1832년,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1악장을 듣고 “스위스 루체른 호수에 비친 달빛 같다”고 표현한 데서 시작됐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부르는 그 서정적인 이름은, 정작 곡을 쓴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후대의 해석인 셈이에요.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조금 신기했어요. 이렇게 유명한 곡의 이름조차 작곡가 본인의 의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감상 한 줄에서 굳어졌다는 게, 클래식 음악이 시대를 건너오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덧입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사실 클래식 곡 중에는 이렇게 후대 사람이 붙인 별명이 원래 제목보다 더 유명해진 경우가 꽤 있는데, 그만큼 곡 자체가 듣는 사람마다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뜻이기도 할 거예요.
짝사랑했던 제자, 줄리에타 귀차르디
이 소나타는 1801년에 완성됐고, 베토벤의 피아노 제자였던 줄리에타 귀차르디 백작 영애에게 헌정됐어요. 당시 베토벤은 서른 살 무렵이었는데, 귀족 출신의 젊고 아름다운 제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으로 전해져요. 문제는 신분 차이였어요. 평민 출신 음악가와 귀족 가문의 딸이라는 벽은 그 시대에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고, 결국 줄리에타는 다른 귀족과 결혼하게 돼요. 이런 배경 때문에 이 곡 전체가 실연의 슬픔을 그대로 담은 곡이라고 알려진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 부분은 조금 과장된 해석이라고 봐야 해요. 1악장의 애상적인 분위기는 분명 그런 감정과 맞닿아 있지만, 3악장은 오히려 격정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로 가득해서 단순히 ‘실연 때문에 쓴 슬픈 곡’이라고 한 줄로 정리하기엔 곡 전체의 결이 훨씬 복잡해요. 개인적으로 이 3악장을 들을 때마다, 슬픔이라기보다는 억눌린 분노나 조바심에 가까운 감정이 느껴져서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옵니다. 신분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는 소재는 그 시대 예술가들 사이에서 드물지 않았지만, 베토벤은 그 감정을 곡 하나에 이렇게 여러 층위로 녹여냈다는 점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져요.
청력이 무너지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
여기서 꼭 짚어야 할 부분이 있어요. 이 곡을 쓴 1801년은 베토벤이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 귀에서 울리는 이명과 청력 저하를 구체적으로 토로하기 시작한 시기와 겹쳐요. 아직 완전한 절망에 빠지기 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쓰기 약 1년 전이라 겉으로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서서히 소리를 잃어가는 공포와 싸우고 있었던 거죠.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질 수 없다는 절망, 그리고 음악가로서 가장 두려운 감각을 잃어간다는 공포가 같은 시기에 겹쳐 있었다는 걸 알고 나면, 이 소나타의 잔잔하면서도 무거운 1악장이 전혀 다르게 들려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두 가지를 동시에 잃어가던 한 인간의 내면이 담긴 곡이었던 거예요. 겉으로는 사교 모임에도 나가고 작곡 활동도 왕성하게 이어갔지만, 정작 본인은 편지 곳곳에서 불안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하니, 그 이중적인 삶이 이 곡의 분위기와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글을 정리하며
정리해보면 이 곡을 둘러싼 이야기는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후대가 덧붙인 낭만이에요. 줄리에타에 대한 마음과 헌정은 사실이지만, ‘월광’이라는 이름과 그로 인한 달빛 아래 이별 이미지는 순전히 나중에 만들어진 서사죠. 그리고 정작 이 곡이 쓰인 진짜 배경에는 청력을 잃어가던 한 인간의 불안이 훨씬 크게 자리하고 있었어요. 이런 걸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느끼는 건, 유명한 곡일수록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실제 배경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점이에요. 다음에 이 곡을 들으실 때는 ‘이별의 슬픔’보다는, 소리를 잃어가면서도 건반 위에서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붙잡아두려 했던 한 사람의 안간힘을 생각해보면 곡이 완전히 다르게 들릴 거예요. 결국 이 곡이 200년 넘게 사랑받는 이유도, 하나의 감정으로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 배리 쿠퍼 베토벤, 옥스퍼드대학교출판부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