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리크 쇼팽 하면 흔히 파리의 화려한 살롱, 섬세하고 우아한 피아노 선율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빗방울 전주곡이 사실 지중해의 작은 섬,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낡은 수도원의 눅눅한 방 안에서, 병약한 몸으로 써 내려간 곡이라는 걸 알고 나면 이 음악이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병든 몸을 이끌고 떠난 요양길
쇼팽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고, 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1838년 겨울, 그는 연인 조르주 상드와 함께 따뜻한 곳에서 요양도 하고 파리 사교계의 시끄러운 소문도 피할 겸 지중해의 마요르카 섬으로 떠나게 됩니다. 지금이야 마요르카가 유럽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지만, 당시 두 사람이 머물렀던 곳은 그런 낭만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발데모사라는 마을의 오래된 수도원 건물이었는데, 가구는 낡고 먼지투성이였다고 전해집니다. 조르주 상드는 훗날 이곳을 두고 시인과 화가가 꿈꾸어온 모든 것을 자연이 이루어놓은 곳이라 회고하기도 했는데, 실제 생활 여건은 상당히 열악했다고합니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도 그리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이혼한 여성이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게다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병약한 남자와 함께 나타났으니, 보수적인 섬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곱게 보일 리 없었을 겁니다. 상점 주인들은 이들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받았고, 상드는 그런 냉대 속에서도 먼 곳까지 가서 영양가 있는 식료품을 구해오고 쇼팽을 간호했다고 합니다. 밤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스페인 신문에 실릴 원고까지 써야 했으니 그야말로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빗소리 속에서 태어난 걱정과 그리움
이런 힘든 환경 속에서도 쇼팽은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시기에 24개의 전주곡을 완성하고, 폴로네이즈와 스케르초 같은 굵직한 작품들까지 써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중에서도 빗방울 전주곡의 탄생 배경은 유독 마음을 붙잡습니다. 어느 날 상드가 볼일이 있어 밖으로 나갔는데, 처음엔 가늘게 내리던 비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굵어졌다고 합니다. 홀로 방에 남아 있던 쇼팽은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상드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혹시 자신만 이곳에 덩그러니 남겨지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 초조함과 그리움을 그대로 건반 위에 옮겨 담은 것이 바로 이 곡입니다.
곡 전체에 걸쳐 낮게 반복되는 음이 있는데, 마치 처마 밑으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훗날 이런 별칭이 붙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빗방울’이라는 제목이 쇼팽 본인이 붙인 게 아니라, 그의 곡을 듣고 감명받은 음악 평론가 한스 폰 뷜로가 붙였다는 점입니다. 상드 역시 이 곡을 듣고 수도원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연상된다고 표현했다고 하니, 곡을 만든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가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따름입니다.
낭만이라기보다는 생존에 가까웠던 시간
개인적으로 이 일화를 알고 나서 곡을 다시 들어보면, 단순히 아름답다는 감상을 넘어서 뭔가 짠한 마음이 듭니다. 화려한 낭만이라기보다는, 아픈 몸으로 타지에서 사랑하는 사람 하나에 의지해야 했던 사람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진달까요.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중간에 갑자기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바뀌는 구간이 있는데, 그 대목을 들을 때마다 쇼팽이 느꼈을 불안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결국 쇼팽과 상드는 그해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마요르카에서의 몇 달은 쇼팽의 음악 인생에서 결코 짧지 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낡고 눅눅한 수도원 방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며 써 내려간 빗소리 같은 선율이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집니다. 이글을 정리하며 좋은 음악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오히려 이런 불안하고 고단한 순간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 WNYC(wny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