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손이 아니었다
바이올린 역사를 통틀어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니콜로 파가니니다. 그의 연주를 직접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소리라고. 손가락이 기이할 정도로 길고 유연하게 꺾여서 보통 사람은 절대 잡을 수 없는 코드를 자유자재로 짚어냈고, 그 속도와 표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활을 다루는 방식도 남달랐다. 남들이 한 음을 겨우 끊어 칠 때 그는 이미 두세 옥타브를 오가며 마치 두 대의 바이올린이 동시에 연주되는 듯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 놀라운 재능이 오히려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파가니니가 악마와 계약을 맺고 그 대가로 초인적인 연주 실력을 얻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 소문이 단순한 뒷담화 수준이 아니었다. 실제로 연주회장에서 그의 연주를 듣던 관객들이 그의 그림자 뒤로 악마가 함께 연주하는 환영을 봤다고 증언했을 정도다. 어떤 관객은 그의 바이올린 줄이 저절로 움직이는 걸 봤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연주가 끝난 뒤 무대 뒤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사라지는 걸 봤다고 주장했다.
마르고 창백한 얼굴, 늘 검은 옷만 고집하던 스타일, 무대 위에서 기괴할 만큼 자유롭게 움직이던 손가락까지 더해지면서 이 소문은 더 힘을 얻었다. 심지어 그가 죽었을 때는 가톨릭 교회가 그를 악마로 규정하고 성지에 묻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의 시신은 수십 년간 제대로 묻히지 못하고 여러 지역을 떠돌아야 했으며, 정식으로 안장되기까지 무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고 전해진다.
병이었을까 초능력이었을까
그렇다면 실제로 파가니니의 몸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금 의학계에서 가장 유력하게 보는 가설은 마르팡 증후군이나 엘러스 단로스 증후군 같은 결합조직 질환이다. 이런 질환을 가진 사람은 관절이 과도하게 유연해지고 손가락 마디가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나는 특징을 보인다. 실제로 그의 손을 봤다는 당대 기록들을 보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거의 관절이 빠진 것처럼 꺾였다는 묘사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런 신체 조건은 단순히 손가락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합조직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관절 전체가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손목과 어깨까지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파가니니가 보여준 극단적인 운지법과 빠른 포지션 이동은 바로 이런 신체적 특성 덕분에 가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런 질환은 동시에 심장이나 혈관 쪽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는 평생 잔병치레가 잦았고 말년에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병으로 설명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이 그 시대에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오해받았던 셈이다.
여기에 파가니니 본인의 태도도 한몫했다. 그는 이 소문을 굳이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대 위에서 일부러 더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사람들이 자신을 악마 같다고 수군거려도 부인하지 않았다. 인터뷰나 공개 석상에서도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며 오히려 궁금증을 더 키우는 방향을 택했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이미지 마케팅이었던 셈이다. 신비주의 전략이 실력에 대한 소문과 겹쳐지면서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버렸고, 유럽 각지의 공연장은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방식, 요즘으로 치면 전혀 낯설지 않다. 얼굴 한 번 제대로 공개 안 하고 신비주의로 일관하다가 어느 순간 떡하니 나타나서 화제를 싹쓸이하는 연예인들, SNS에 일부러 애매한 떡밥만 던져놓고 팬들이 알아서 추측하고 난리 나게 만드는 마케팅 수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가니니는 무려 200년 전에 이미 이 전략을 본능적으로 써먹은 원조 신비주의 아이돌이었던 셈이다.
시대가 만든 괴물
결국 파가니니를 둘러싼 악마설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신체 조건과 그 자신의 신비주의 전략, 그리고 그 시대 특유의 미신적인 시선이 겹쳐서 만들어낸 결과물에 가깝다. 실제로 그가 악마와 거래를 했을 리는 없다. 다만 한 인간의 몸이 만들어낸 재능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시대가 그 재능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해석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인 것이다.
지금이야 마르팡 증후군이나 결합조직 질환에 대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19세기 유럽 사람들에게는 그런 의학적 지식이 거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하면 사람들은 늘 초자연적인 설명을 먼저 떠올렸고, 파가니니는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오해받은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는 악마가 아니라, 시대를 너무 앞서간 몸을 가지고 태어난 비운의 천재였을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Marfan Trust, Niccolo Pagan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