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평생 고향 보헤미아의 민속 정서를 음악에 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스메타나와 함께 체코 국민악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힐 만큼, 그의 음악은 늘 고향의 정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정작 가장 유명한 작품을 만든 곳은 고향이 아니라 낯선 땅 미국이었습니다. 오늘은 드보르자크가 어떻게 미국까지 가게 됐고, 그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 유명한 교향곡을 완성했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돈 때문에 흔들린 유럽 최고 작곡가
1891년, 이미 프라하 음악원 교수로 자리를 잡고 있던 드보르자크에게 뜻밖의 제안이 도착합니다. 미국 뉴욕에 새로 생긴 내셔널 음악원에서 원장으로 와달라는 초청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몇 차례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낯선 나라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향수병을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음악원 측이 제시한 연봉은 당시 기준으로 파격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체코에서 받던 것보다 무려 스물다섯 배에 가까운 금액이었다고 하니, 아무리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흔들리지 않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그는 가족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기로 결심합니다.
낯선 대륙에서 만난 새로운 음악
미국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여러모로 낯선 경험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무엇보다 음악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유럽과는 다를테니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드보르자크가 이 새로운 환경을 그저 견디기만 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흡수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음악원장으로 부임한 뒤,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방침을 세웁니다. 인종에 상관없이 재능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든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죠. 그 결과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의 학생들도 음악원에 자유롭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그 시절 분위기를 생각하면 꽤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개방적인 태도가 그의 음악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줍니다. 당시 음악원 조수로 있던 흑인 바리톤 가수 해리 벌리를 통해, 드보르자크는 흑인영가라는 낯선 음악 장르를 접하게 됩니다. 노예 시대의 아픔과 신앙, 자유에 대한 갈망이 녹아든 이 선율들은 드보르자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아메리카 원주민 음악의 특유한 리듬과 색채까지 더해지면서, 그는 지금껏 유럽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음악적 재료를 손에 쥐게 됩니다. 고향에서 늘 체코 민속 음악을 자양분 삼아 곡을 써왔던 그가, 이번엔 완전히 낯선 대륙의 소리를 재료로 삼게 된 셈입니다.
향수와 호기심이 함께 빚어낸 신세계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1893년 완성된 교향곡 9번, 훗날 신세계로부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신세계’는 다름 아닌 아메리카 대륙을 의미합니다. 이 곡에는 체코 특유의 서정적인 선율과 흑인영가, 원주민 음악의 색채가 절묘하게 뒤섞여 있는데, 그래서인지 유럽 사람에게도 미국 사람에게도 묘하게 친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인상을 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건, 향수와 호기심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감정이 한 곡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점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새로운 것에 눈을 반짝이는, 그 어중간하고도 인간적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느낌이랄까요.
실제로 드보르자크는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특유의 소박하고 부지런한 성격 탓인지, 그는 번잡한 도시보다 늘 한적한 시골 풍경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알아주는 철도광이기도 해서, 미국에서 강의를 하다가도 기관차를 구경하러 가겠다며 수업을 통째로 휴강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작곡가의 이런 소박하고 엉뚱한 면모를 알고 나면, 신세계 교향곡을 듣는 느낌도 조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거창한 예술적 사명감보다는,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던 한 사람의 소소한 일상이 그 안에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신세계 교향곡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
드보르자크는 결국 2년 반 정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향 프라하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서 남긴 음악적 유산은 지금까지도 클래식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유럽 작곡가가 낯선 대륙에서 느낀 감정을 이렇게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승화시킨 사례는 흔치 않기 때문이겠지요. 결국 신세계 교향곡은 단순히 미국을 배경으로 한 곡이 아니라,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새로운 세계에 마음을 열었던 한 인간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Interlude(interlude.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