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빚에 쫓겨 여러 나라를 도망 다니던 작곡가가 있었다면 믿으시겠어요? 오페라의 거장이라 불리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이야기예요. 화려한 음악과 웅장한 무대 뒤에는 의외로 돈 문제로 늘 쫓기던 한 사람의 인생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인생을 구해준 건 다름 아닌 스무 살 남짓한 어린 왕이었어요.
빚 때문에 도시를 떠나야 했던 사람
바그너는 평생 돈 관리에 서툴렀어요. 아니, 서툴렀다기보다는 애초에 절약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사람에 가까웠어요. 그는 항상 형편에 맞지 않는 화려한 생활을 즐겼어요. 값비싼 향수를 쓰고, 몸에 걸치는 속옷까지 값비싼 실크로 맞추는 식이었어요. 수입은 늘 부족한데 씀씀이는 줄지 않으니 빚은 계속 쌓여만 갔어요.
문제는 빚이 쌓이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의 삶에는 빚쟁이들을 피해 살던 도시를 떠나야 했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요.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힐 위기에 처하면 짐을 싸서 다른 나라로 몸을 피하는 일이 반복됐어요. 오페라 무대 위에서는 신이나 영웅들의 장대한 이야기를 그리던 사람이, 현실에서는 채권자들의 눈을 피해 국경을 넘는 처지였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요.
혁명에 가담했다가 쫓기는 몸이 되다
바그너의 인생을 더 복잡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더 있어요. 1849년, 그는 드레스덴에서 일어난 혁명 봉기에 가담해요. 직접 무장하고 싸운 건 아니었지만, 봉기가 벌어지는 동안 망을 보는 역할을 맡았다고 해요. 하지만 이 봉기는 결국 진압됐고, 당국은 바그너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어요. 그는 또다시 도망자 신세가 됐고, 이번에는 아예 국외로 망명을 떠나야 했어요. 하필 이 시기에 그의 오페라 로엔그린이 초연됐는데, 정작 작곡가 본인은 수배자 신분이라 그 자리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어요. 자신이 만든 작품의 첫 무대를 남의 소식으로만 전해 들어야 했던 셈이에요.
스무 살 왕이 나타나다
이렇게 빚과 도피를 반복하던 바그너의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와요. 1864년, 바이에른의 왕위에 루트비히 2세가 오르게 돼요.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젊은 왕이었어요. 그런데 이 젊은 왕이 바그너의 열렬한 숭배자였어요. 왕이 되자마자 그는 바그너를 자신의 후원 아래로 불러들여서 그의 작품 활동과 생활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해요. 평생 돈 문제로 시달리던 바그너에게는 그야말로 구원 같은 순간이었을 거예요.
루트비히 2세의 후원 덕분에 바그너는 오랜 시간 매달려온 대작 니벨룽의 반지 사부작을 완성할 수 있었고, 훗날 그의 작품만을 위한 전용 극장인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을 짓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어요. 다만 이 관계가 완전히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에요. 바그너는 왕의 후원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씀씀이를 줄이지 않았고, 왕이 그에게 보이는 지나친 애정과 신뢰를 두고 주변 신하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해요. 한 나라의 정치에까지 작곡가 한 사람의 영향력이 미칠까 걱정했던 거죠.평생 돈 문제로 시달리던 바그너에게는 그야말로 구원 같은 순간이었을 거예요. 요즘으로 치면 로또 1등에 당첨된 것과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한 행운이었던 셈이에요. 로또는 당첨금을 받으면 그걸로 끝이지만, 바그너는 돈뿐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평생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까지 함께 얻었으니까요.
빚쟁이에게 쫓기던 사람이 남긴 유산
저는 이 이야기를 볼 때마다 예술가의 재능과 생활 능력은 정말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바그너는 평생 돈 관리에는 서툴렀지만, 그 화려함을 향한 욕심과 타협하지 않는 고집이 오히려 니벨룽의 반지 같은 거대한 작품을 완성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을지도 몰라요. 만약 그가 절약하며 소박하게 살았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웅장한 바그너의 음악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빚에 쫓겨 도망 다니던 사람이 결국 한 나라의 왕에게 발탁돼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극장까지 지었다는 사실이, 지금 들어도 한 편의 드라마 같아요.
참고: 인터루드(interlude.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