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방법
다운로드
자격 조건

죽고 나서야 발견된 우산 백 개 괴짜 작곡가 에릭 사티의 이상한 하루

회색 벨벳 정장을 죽을 때까지 똑같은 걸로 일곱 벌 사놓고 입은 작곡가, 우산을 늘 들고 다니면서도 비 올 때는 쓰지 않던 작곡가. 에릭 사티라는 이름을 처음 들으면 다들 무슨 그런 사람이 있냐며 웃으시는데, 실제로 있었던 사람이에요. 오늘은 이 독특한 프랑스 작곡가의 일상과,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방에서 발견된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가구처럼 존재하는 음악을 만들다

사티는 1917년에 음악에 대해 아주 낯선 개념을 하나 제시해요. 프랑스어로 뮈지크 다뫼블르망, 우리말로 옮기면 가구 음악이라는 거예요. 이 음악은 사람들이 집중해서 듣도록 만든 곡이 아니라, 마치 방 안의 배경 소음처럼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도록 만든 곡이었어요. 손님들이 연주회장에 앉아서 음악에 집중하면 사티가 직접 나서서 이 음악은 듣는 게 아니라 그냥 흘려보내는 거라며 다시 대화를 나누라고 권했다는 일화도 있어요.

저는 이 이야기를 알고 나서야 왜 제가 사티의 곡을 유독 편하게 느꼈는지 이해가 됐어요. 평소에도 애써 집중해서 듣지 않아도 되는, 그냥 흘러가는 잔잔한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제 취향이 사티가 애초에 의도했던 감상 방식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던 거예요. 지금 우리가 카페나 매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듣는 배경 음악이라는 개념을, 사티는 100년도 더 전에 이미 상상하고 있었던 셈이에요.

같은 정장 일곱 벌과 벨벳 신사라는 별명

사티는 스물아홉 살 무렵,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똑같은 회색 벨벳 정장을 일곱 벌이나 사요. 그리고 그 뒤로 평생 그 옷만 입었어요. 왜 하필 일곱 벌이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매일 똑같은 옷을 입으면서도 늘 단정하고 우아해 보이려는 그만의 고집이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그는 늘 우산을 손에 들고 다녔는데, 정작 비가 올 때는 펴지 않고 햇빛이 강할 때만 얼굴을 가리려고 펼쳤다고 해요. 이런 독특한 행동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그를 벨벳 신사라는 애정 어린 별명으로 불렀어요.

죽고 나서야 열린 방

사티가 세상을 떠난 뒤, 친구들이 그가 살던 아르쾨유의 작업실을 정리하러 들어갔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아무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방이 하나 있었어요. 문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똑같이 생긴 검은 우산 수백 개가 가득 들어차 있었대요. 평생 우산 하나만 들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사실은 방 하나를 통째로 우산으로 채워두고 살았던 거예요.

다른 방에서는 또 다른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피아노 두 대가 위아래로 포개져 있었는데, 사티는 아래쪽 피아노로 연주를 하고 위쪽 피아노는 아예 수납장처럼 쓰고 있었어요. 그 위에는 뜯지도 않은 편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고 해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보낸 편지를 열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쌓아만 뒀던 거죠.

초 단위로 짜인 하루, 머리 넣는 구멍이 있는 둥근 침대

사티의 기이함은 생활 습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요. 그는 자신의 하루 일과를 초 단위로 나눠서 공개하기도 했는데, 오전 10시 23분부터 11시 47분까지는 영감을 얻는 시간, 낮 12시 11분에는 3분짜리 점심 식사라는 식이었어요. 식사도 온통 흰색 음식으로만 채웠다고 하는데, 달걀과 설탕처럼 색이 흰 음식만 먹는 독특한 식습관을 유지했어요. 잠은 머리가 들어갈 구멍이 뚫린 둥근 침대에서 잤고, 한 시간마다 체온을 재는 습관도 있었다고 해요.

이뿐만이 아니에요. 1892년에는 스스로 교회를 하나 세우고 자신을 그 교회의 사제이자 성가대장이라고 선언했어요. 그런데 그 교회의 신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티 자신 단 한 명뿐이었다고 해요.

괴짜였지만, 시대를 앞서간 사람

이렇게만 들으면 그냥 별난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사티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신선해요. 단순한 화성과 반복되는 선율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그의 피아노곡들은 오늘날 명상 음악이나 카페 배경 음악의 뿌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예요. 저는 사티의 일화를 알고 나면 오히려 그의 음악이 더 다정하게 들려요. 초 단위로 계산된 하루를 살면서도, 정작 자기가 만든 음악만큼은 아무도 애써 듣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던 사람이니까요. 그 여유로운 마음이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참고: 할리돈뮤직(halidon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