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한 여자를 살해하고, 사형을 당하고, 마녀들의 잔치까지 상상하며 쫓아다녔다면 믿으시겠어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뒤에는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짝사랑이 낳은 집착이 어쩌다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파격적인 교향곡 하나로 완성됐는지, 오늘은 그 사연을 천천히 풀어볼게요. 레슨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이 곡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눈이 동그래지는데, 어른들이 들어도 흥미로운 이야기 시작할게요.
무대 위 여배우에게 한눈에 반하다
1827년 9월, 스물세 살의 젊은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파리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공연을 보러 가요. 오필리어 역을 맡은 배우는 아일랜드 출신 해리엇 스미드슨이었어요. 당시 파리의 연극 무대는 대부분 정형화된 몸짓과 낭독조의 대사로 채워져 있었는데, 스미드슨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기했어요. 평론가들은 그녀의 연기, 특히 몸짓과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독특한 방식을 극찬했어요. 마치 무대 위에서 진짜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는 평이었죠. 그 주에 이어진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 공연까지 연이어 성공하면서 스미드슨은 파리 낭만주의 관객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스타가 됐어요.
베를리오즈도 그중 한 사람이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었어요. 그는 그날 이후로 스미드슨이 출연하는 공연은 빠짐없이 찾아다녔고,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상태가 됐다고 해요.
답장 없는 편지, 그리고 집 앞으로 이사
문제는 여기서부터예요. 베를리오즈의 애정은 평범한 팬심을 훌쩍 넘어섰어요. 그는 스미드슨에게 답장 없는 연애편지를 계속 보냈고, 심지어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려고 그녀의 집이 보이는 곳에 따로 방을 얻기까지 했어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행동이죠. 하지만 스미드슨은 그의 구애에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어요. 그녀 입장에서는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젊은 작곡가의 일방적인 구애였을 뿐이었을 거예요.
몇 년 동안 이런 짝사랑이 이어지면서 베를리오즈의 마음은 점점 더 커져만 갔어요.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걱정 반, 안타까움 반의 시선으로 지켜봤다고 전해져요.
짝사랑을 음악으로 쏟아내다
가슴속에 쌓인 이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던 베를리오즈는 결국 음악으로 답을 찾아요. 1830년 12월, 그는 환상 교향곡을 완성해서 무대에 올려요. 이 곡은 한 음악가가 이상화된 여인을 향한 절망적인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그 여인을 상징하는 하나의 선율이 곡 전체에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걸 고정 관념이라는 뜻의 이데 픽스라고 불러요. 이 선율은 1악장부터 마지막 악장까지 모습을 바꿔가며 계속 나타나요. 어떤 때는 설레는 사랑의 노래처럼, 또 어떤 때는 일그러지고 뒤틀린 형태로요. 지금 들어도 낯설지 않은 기법이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새로운 시도였어요.
줄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요. 주인공은 아편을 먹고 환각에 빠지고, 사랑하는 여인을 살해하는 상상을 하고, 자신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마지막에는 그녀가 마녀들의 잔치에서 모욕당하는 광경까지 목격해요. 5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사랑의 설렘에서 시작해 질투, 절망, 환각,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악몽으로 점점 치닫는 구조예요. 짝사랑 하나로 이렇게까지 거창하고 극단적인 이야기를 써 내려간 작곡가가 또 있을까 싶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 결말이 있어요
여기까지만 보면 집착으로 끝난 슬픈 짝사랑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야기는 반전이 있어요. 몇 년 뒤인 1832년, 스미드슨은 베를리오즈의 또 다른 작품 렐리오를 듣게 돼요. 그리고 그 음악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자신을 향한 그 오랜 감정이 결국 이토록 강렬한 예술로 승화됐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은 그때부터 만나기 시작했고, 서로 사랑에 빠졌고, 1833년 10월 3일 결혼까지 하게 돼요. 양쪽 집안 모두 거세게 반대했지만 결혼을 밀어붙였다고 해요. 몇 년 동안 답장 한 통 받지 못했던 짝사랑이 결국 결혼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에요.
다만 이 결혼이 끝까지 행복하지는 못했어요. 스미드슨은 배우로서의 경력이 저물고 건강까지 나빠졌고, 베를리오즈는 1840년 무렵부터 마음이 멀어져서 결국 다른 여인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스미드슨은 1848년부터 뇌졸중을 여러 차례 겪으며 언어 능력까지 잃었고, 1854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베를리오즈는 그녀의 죽음 앞에서 깊이 무너졌다고 전해져요.
집착에서 시작해 사랑으로, 다시 이별로
환상 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저는 이 곡이 단순히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실제 인생이 통째로 담긴 곡이라는 게 신기하게 느껴져요. 짝사랑의 절망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현실에서 결혼까지 이어졌고, 끝내는 다시 슬픔으로 마무리된 관계니까요.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 이토록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랑에서 집착으로, 다시 현실의 결혼과 이별로 모양을 바꿔갔다는 게 어쩐지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해요.
음악 하나에 이렇게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압축돼 있다는 게, 클래식 음악을 그냥 옛날 곡으로만 여기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아요. 다음에 이 곡을 들으실 때는 그 반복되는 선율 하나가 실제로 한 여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쓰인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세요.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올 거예요.
참고: 인터루드(interlude.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