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를 들으면 누구나 화려한 바이올린 선율을 먼저 떠올려요. 그런데 이 곡을 쓴 사람이 실제로 사제복을 입은 신부였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게다가 그는 미사를 거의 드리지 않은 신부였고, 평생 소녀들로만 이루어진 악단을 가르치며 살았어요. 알고 나면 사계가 조금 다르게 들리는, 그런 흥미로운 뒷이야기예요.
몸이 약해서 급하게 세례를 받은 아이
비발디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천식으로 짐작되는 만성 호흡기 질환을 갖고 있었고, 그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정식 절차를 기다리지 못하고 응급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해요. 이 병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어요. 다행히 병약함이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왕성한 활동력까지 꺾지는 못했지만, 훗날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 하나를 만들게 돼요.
빨간 머리 신부님이라는 별명
비발디는 1703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어요. 그런데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미사를 집전하는 일을 그만둬요. 본인은 천식 때문에 도저히 미사를 이어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어요. 다만 일부 음악사학자들은 이 결정이 순전히 건강 문제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보기도 해요. 사제라는 신분은 유지하면서 음악가로서의 삶에 더 집중하려는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 무렵 사람들은 그를 빨간 머리 신부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어요. 타고난 붉은 머리색과 신부라는 신분이 합쳐진 별명이었죠. 미사는 거의 드리지 않으면서도 신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던 셈이에요.
고아원이 음악 학교가 되다
비발디의 진짜 무대는 성당이 아니라 베네치아의 한 자선 시설이었어요.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라는 곳으로, 부모 없는 소녀들을 돌보는 고아원이었어요. 비발디는 1703년부터 1740년까지 긴 시간 동안 이곳과 인연을 이어가며 음악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이곳은 단순한 보육 시설이 아니었어요. 비발디의 손을 거치면서 오스페달레는 사실상 음악 학교이자 전문 연주 단체로 성장했어요. 소녀들은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 뛰어난 기량을 갖춘 연주자로 자랐고, 비발디는 이들을 위해 곡을 쓰고 직접 지휘하며 무대에 세웠어요.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여성 연주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악단이 정교한 기술과 자유로운 표현력을 동시에 갖추도록 가르쳤다고 해요. 사계를 비롯한 그의 수많은 협주곡이 바로 이 소녀들의 손끝에서 처음 연주됐을 가능성이 높아요.
교회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비발디는 성악가 안나 지로와 함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활동했는데, 이 때문에 교회 쪽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어요. 신부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행보로 비쳤던 거예요. 하지만 비발디는 종교적 의무보다 음악가로서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런 선택들이 쌓여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비발디의 음악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사제복을 입었지만 미사보다 활을 더 많이 잡았던 사람, 성당보다 고아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 비발디의 삶을 알고 나면 사계의 봄 악장을 들을 때 그 경쾌함 뒤에 숨어 있는 한 신부의 고집스러운 선택이 함께 떠오르실 거예요.
참고: interlude(interlude.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