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마니아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리스트마니아’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리스트마니아는 19세기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를 향한 대중의 광적인 열광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단순히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고 심지어 그가 남긴 물건까지 소유하고 싶어했던 팬덤 현상을 지칭합니다. 오늘날의 아이돌 팬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뜨거웠던 이 현상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프란츠 리스트는 어떤 인물이었고 리스트마니아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나
프란츠 리스트는 1811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1886년 세상을 떠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비르투오소 연주자로 손꼽혔으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한 화려하고 현란한 피아노 기교로 유럽 전역의 청중을 사로잡았습니다. 잘생긴 외모와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까지 더해지면서, 그는 단순한 음악가를 넘어 대중적인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헥토르 베를리오즈, 프레데리크 쇼팽, 리하르트 바그너 등 당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들과도 깊은 교류를 나누며 음악적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리스트마니아(Lisztomania)’라는 단어는 리스트와 친분이 있던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처음 만들어낸 표현입니다. 리스트가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의 오랜 관계를 정리한 뒤 본격적으로 유럽 순회공연을 시작하면서, 그를 향한 대중의 반응은 점점 더 뜨거워졌습니다. 하이네는 이 현상을 지켜보며 마치 광기에 가까운 팬덤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 용어를 붙였고, 이후 이 단어는 리스트를 상징하는 고유명사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지요. 지금이야 팬덤 문화를 설명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있지만, 당시로서는 이런 현상 자체가 워낙 낯설었기 때문에 아예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야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19세기 클래식 팬덤은 얼마나 뜨거웠나
리스트의 공연장에서는 지금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면 청중석 곳곳에서 여성 관객들이 감정에 압도되어 실신하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은 무대를 향해 꽃과 보석을 던지며 환호했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손끝에 입맞춤을 청하는 팬도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가 마시고 남긴 찻잔의 찌꺼기를 향수병에 담아 간직하거나, 그가 피우던 시가 꽁초를 이니셜이 새겨진 로켓 장신구에 넣어 보관하는 등, 오늘날의 극성팬 문화와 매우 닮은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런 반응들이 요즘 K팝 콘서트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아이돌 콘서트장에 가보면 무대 위 멤버 이름을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응원봉을 흔들며 눈물을 흘리는 팬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착용했던 소품이나 사인 앨범을 소중히 보관하고, 콘서트 티켓 한 장을 구하기 위해 몇 시간씩 대기하는 것도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리스트 시대에 꽃과 보석을 던지던 팬들이, 지금은 응원봉과 플래카드로 그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셈입니다. 표현 방식과 시대적 배경은 완전히 다르지만,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아낌없이 애정을 쏟아붓는 팬심의 본질만큼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미디어와 이동 수단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했던 시절에 이 정도 규모의 열풍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는 사실도 새삼 놀랍게 다가옵니다.
리스트마니아가 남긴 의미
리스트마니아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음악가가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 대중적 스타로 인식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리스트 이전에도 니콜로 파가니니 같은 비르투오소 연주자가 대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사례는 있었지만, 연주자 개인에게 이토록 집착에 가까운 팬덤이 형성된 것은 리스트가 처음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시대와 장르는 다르지만, 좋아하는 대상에게 열광하는 인간의 마음만큼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재밌는 사실을 리스트마니아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팬덤이라는 문화 자체가 기술이나 미디어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오래전부터 지녀온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라는 걸 리스트마니아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셈입니다.
참고: The Conversation